[한경과 맛있는 만남] "12수 끝에 합격한 장수고시생…공부·알바하느라 여행 한번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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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옛 야구팀 삼미 슈퍼스타즈 광팬 '루저'의 무한도전…제 삶과 닮았죠"
꼴찌의 반항
반 59명중 56등 할 정도로 고교시절 공부 관심 없어
종일 음악 듣거나 야구 시청…삼수 끝에 간신히 法大 갔죠
꼴찌의 반란
고단한 삶 지탱해준 건 司試가 준 미래에 대한 '희망'
법조사회, 로스쿨만 남을 땐 나같은 '개천의 용' 불가능해
"옛 야구팀 삼미 슈퍼스타즈 광팬 '루저'의 무한도전…제 삶과 닮았죠"
꼴찌의 반항
반 59명중 56등 할 정도로 고교시절 공부 관심 없어
종일 음악 듣거나 야구 시청…삼수 끝에 간신히 法大 갔죠
꼴찌의 반란
고단한 삶 지탱해준 건 司試가 준 미래에 대한 '희망'
법조사회, 로스쿨만 남을 땐 나같은 '개천의 용' 불가능해
다섯 번 경기에서 한 경기를 이길까 말까 했던 삼미 슈퍼스타즈.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첫해 최하위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OB 베어스를 상대로는 시즌 전패를 기록한 팀이었다. 지역 연고도 없는 이 팀을 응원했다. 남들은 ‘루저(패배자)’ 취급을 했지만 계속 도전하는 모습이 좋았다.
본인의 삶과 닮아서였을까. 대학 입시에서는 삼수를 했고 사법시험은 11전 12기, 서른넷의 나이로 어렵사리 합격했다.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고 늘 녹록지 않은 삶이었다.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45·사법연수원 36기) 얘기다. 전국 최대 지방변호사회인 서울변회의 수장에 올랐지만 그에게는 아직 ‘주류’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11일 저녁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앞 중식당 레드찹스틱에서 만난 김 회장은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역정을 들려줬다.
◆59명 중 56등…모범생과 거리 먼 평범한 학생
회색 벽돌과 모던한 미술품으로 내부가 꾸며진 레드찹스틱은 여느 중식당에 비해 젊고 캐주얼한 느낌이었다. 김 회장은 “평소 고급 식당을 자주 가지 않지만 좋은 일이 있을 때 가끔 들르는 곳”이라며 “다른 중식당에 비해 음식이 담백하고 법원과도 가까워 법조인들이 자주 찾는다”고 소개했다. 그는 몇 가지 요리와 짜장면 한 그릇을 시키더니 과거로 시계추를 돌렸다.
김 회장은 보통의 법조인과는 달리 학창시절 공부에 별 취미가 없었다. 소위 말하는 ‘문제아’는 아니었지만 모범생은 더더욱 아니었다. 김 회장은 “아버지는 중학교 교사였지만 억지로 공부를 강요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좋아하는 일을 하는 만큼 말리지 않았다”고 했다. 팝 음악에 빨리 눈을 뜬 그는 하루 종일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었고, 야구 시즌이면 TV 앞에 앉아 야구 삼매경에 빠졌다. 노래를 들으면 앨범명과 작곡자가 자연스레 눈앞에 떠올랐고, 야구 선수들 프로필과 경기 성적을 줄줄이 뀄다. 바둑에도 재미를 붙여 2~3급 실력이 될 정도로 꾸준히 뒀다. 하지만 ‘잡기’에 너무 공을 들인 탓인지 성적은 하위권을 맴돌았다. 김 회장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반 59명 중 56등을 한 적도 있다”며 “고등학교 시절 반에 있는 수많은 평범한 학생 중 공부 좀 못하는 한 명이었다”고 털어놨다.
그 사이 이곳 대표 메뉴인 유린기가 나왔다. 새콤하면서도 맵싸한 소스와 바삭한 고기의 식감이 잘 어우러졌다. 김 회장은 몇 차례 젓가락을 옮기더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기초를 닦아 놓지 않아서였는지 첫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 재수를 거쳐 삼수해 간신히 가천대(당시 경원대) 법학과 90학번으로 입학했다.
“‘나 같은 별로 가진 것 없는 사람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자신에게 많이 던졌어요. 앞으로 법률가가 되면 사회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1학년 때 사법시험을 치기로 결심했죠.”
◆어려운 가정 환경…고시원 총무 하며 사시 준비
삼수를 한 터라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사시 공부를 시작했다. 살면서 가장 끈덕지게 책상을 지켰지만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친 사시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때부터 끝없는 고난의 시작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가세가 기울었다. 월셋집에 부은 보증금 1000만원이 온 가족의 전 재산이었다.
공부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당장 입에 풀칠할 돈이 필요했다. 다행히 서울 강남 일대의 고시원에서 총무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지낼 때는 저녁마다 고시 식당에서 일했다. 한 달에 30만, 40만원 받는 게 고작이었지만 밥을 공짜로 먹을 수 있어서 만족했다. 김 회장은 “돈 없는 장수 고시생인 탓에 젊은 나이에 여행 한번 제대로 못해봤다”며 “1차 시험을 어렵게 몇 차례 붙었지만 2차 시험에서 또 떨어져 좌절했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떨어지기를 열한 차례, 2004년 최종 합격자 명단에 그의 이름 세 글자가 올랐다. 그렇게 고대하던 합격자 발표 때도 그는 고시 식당에서 음식물쓰레기를 버리고 있었다.
처음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것은 이재명 성남시장(당시 변호사)의 개인 사무실에서였다. 1년 반 동안 고용 변호사로 일했다. 이 시장이 정치판에 뛰어들면서 사무실을 옮겼지만, 짧은 기간 실무 경험을 다양하게 쌓고 많이 배웠다고 했다. 그 다음은 여느 서초동의 ‘개미 변호사’와 다를 게 없었다. 김 회장은 “민사·형사·이혼·자문 사건 가리지 않고 수임하며 보람 있게 변호사 생활을 했다”며 “일단 법조인이 되고 나니 학력이나 배경에 크게 상관 없이 노력하고 실력을 쌓는 만큼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사법시험 존치해야…공정 사회 지향
칠리새우와 탕수육, 고추잡채 등 인기 요리가 연이어 테이블을 채웠다. 다른 식당에 비해 간을 덜 해서 자극적이지 않았고 고유한 풍미가 느껴졌다. 그 사이 시계추는 현재로 돌아와 있었다. 김 회장은 법조계의 대표적인 ‘사시 존치주의자’다. 지난해 서울지방변호사회 부회장으로 활동할 당시 목소리를 높인 데 이어 회장 선거에서도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사시는 2017년 폐지가 예정돼 있다. 사시 존치에 목숨을 거는 이유를 물으니 “나 같은 사람도 법조인을 할 수 있는 세상이 공정한 세상이라고 믿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로스쿨 체제 아래에서는 나이가 너무 많거나 돈이 없으면 입학할 수 있는 기회부터 박탈당해요. 지방대 출신에, 돈도 백도 없는 저 같은 사람이 로스쿨 체제 아래에서 변호사가 될 수 있었을까요? 로스쿨 제도를 유지하더라도 또 다른 ‘희망의 사다리’를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 단체의 직역 수호…사회적 현안에도 앞장
김 회장은 취임한 지 이제 한 달 남짓이지만 초반부터 속도를 내고 있다. 각종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 변호사 업계의 개혁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서울변회는 최근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현장에 있었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대법관으로 부적절하다는 성명서를 냈다. 신임 회장이 되고 처음으로 서울변회가 낸 성명서였다. 그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개인적으로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하게 된 하나의 계기이기도 했던 사건”이라며 “법원 검찰 문제에 관해서는 변호사 단체가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법조 삼륜의 균형과 견제의 원리에도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내부 징계로 사퇴한 판·검사들의 변호사 신청도 이 같은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김 회장은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대해 “국고 지원을 받으며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가진 시민단체가 법 대상에서 빠진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민간 언론을 적용 대상에 계속 포함시킨다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변호사 단체 역시 적용 대상에 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 생태계 바로 잡을 것”
김 회장은 불법 브로커 등 변호사법 위반 사범들을 고발하는 작업에도 최근 첫발을 뗐다. 김 회장은 ‘사무장 로펌’ 등 전통적인 변호사법 위반 사례도 많지만 최근에는 아예 온라인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몰래 불법 수임 활동을 하는 사범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건 브로커들이 보통 수임료의 40% 가까이를 수수료로 떼가는데 이 때문에 사건 수임료가 올라가고 의뢰인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불법 브로커를 직접 검찰에 고발해 교란된 법조 생태계를 바로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장기적으로 변호사들이 제값을 받고 사건을 수임하고 제대로 일감을 찾을 수 있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앞으로 중소기업 등과 변호사 고문 계약을 연결해주는 등 업계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할 계획이다.
마지막 식사로 짜장면이 나왔다. 김 회장은 면발을 크게 한 젓가락 들면서 웃었다. “이 가게엔 맛있는 중식 메뉴가 많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짜장면을 제일 좋아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가 짜장면을 처음 사줬는데 그 맛을 잊을 수 없어요. 너무 고마워서 그 친구 이름까지 아직 기억할 정도죠.”
그런 고단했던 삶의 경험 때문일까. 학연도 지연도 없지만 그를 지지하는 법조인은 많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유효 투표 7053표 중 2617표(37.1%)를 얻어 후보 5명 가운데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아직도 제가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 같은 사람도 성공할 수 있는 공정한 사회, 국민이 변호사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면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자리에 있든 꾸준히 가다 보면 그런 날이 오겠죠. ‘루저’ 삼미 슈퍼스타즈가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인 넥센 히어로즈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요.” 김한규 회장이 찾은집 레드찹스틱
조개 육수로 간 맞춘 짬뽕…매콤한 닭고기 유린기도 인기
서울 서초동에 있는 레드찹스틱은 법조인들이 자주 찾는 중국 음식 전문 식당이다. 저(低)나트륨을 추구하는 건강한 중식을 표방하고 있다. 대부분 식재료를 당일 가져와 사용하고 특히 해산물류는 주방에 설치한 수족관에 보관해 조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바삭하게 튀긴 닭고기와 매콤한 청양고추, 간장 소스로 양념한 유린기가 대표 메뉴다. 여성이 좋아하는 레몬크림새우도 일품이다. 조개 육수로 간을 맞춘 저염식 짬뽕, 짜장 등도 인기 메뉴다. 유린기 3만원, 레몬크림새우 3만5000원, 삼선짬뽕 8000원, 삼선짜장 6000원. 영업시간은 오전 11시30분~오후 3시30분, 오후 5시30분~10시. (02)525-9287
1907년 출범한 서울辯會
인권 옹호·정의 실현 추구
서울지방변호사회는 1907년 출범해 이면우 변호사가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인권 옹호와 사회 정의 실현을 목적으로 변호사법에 따라 설립됐다. 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법률 지원 사업, 사회공헌 활동, 회원 권익 옹호와 복지 증진, 전문성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 변호사가 20대 회장을 지냈다. 전국의 변호사는 1만8708명으로, 이 중 서울변회 소속이 1만3876명(74.1%)이다.
배석준/정소람 기자 eulius@hankyung.com
본인의 삶과 닮아서였을까. 대학 입시에서는 삼수를 했고 사법시험은 11전 12기, 서른넷의 나이로 어렵사리 합격했다.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고 늘 녹록지 않은 삶이었다.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45·사법연수원 36기) 얘기다. 전국 최대 지방변호사회인 서울변회의 수장에 올랐지만 그에게는 아직 ‘주류’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11일 저녁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앞 중식당 레드찹스틱에서 만난 김 회장은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역정을 들려줬다.
◆59명 중 56등…모범생과 거리 먼 평범한 학생
회색 벽돌과 모던한 미술품으로 내부가 꾸며진 레드찹스틱은 여느 중식당에 비해 젊고 캐주얼한 느낌이었다. 김 회장은 “평소 고급 식당을 자주 가지 않지만 좋은 일이 있을 때 가끔 들르는 곳”이라며 “다른 중식당에 비해 음식이 담백하고 법원과도 가까워 법조인들이 자주 찾는다”고 소개했다. 그는 몇 가지 요리와 짜장면 한 그릇을 시키더니 과거로 시계추를 돌렸다.
김 회장은 보통의 법조인과는 달리 학창시절 공부에 별 취미가 없었다. 소위 말하는 ‘문제아’는 아니었지만 모범생은 더더욱 아니었다. 김 회장은 “아버지는 중학교 교사였지만 억지로 공부를 강요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좋아하는 일을 하는 만큼 말리지 않았다”고 했다. 팝 음악에 빨리 눈을 뜬 그는 하루 종일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었고, 야구 시즌이면 TV 앞에 앉아 야구 삼매경에 빠졌다. 노래를 들으면 앨범명과 작곡자가 자연스레 눈앞에 떠올랐고, 야구 선수들 프로필과 경기 성적을 줄줄이 뀄다. 바둑에도 재미를 붙여 2~3급 실력이 될 정도로 꾸준히 뒀다. 하지만 ‘잡기’에 너무 공을 들인 탓인지 성적은 하위권을 맴돌았다. 김 회장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반 59명 중 56등을 한 적도 있다”며 “고등학교 시절 반에 있는 수많은 평범한 학생 중 공부 좀 못하는 한 명이었다”고 털어놨다.
그 사이 이곳 대표 메뉴인 유린기가 나왔다. 새콤하면서도 맵싸한 소스와 바삭한 고기의 식감이 잘 어우러졌다. 김 회장은 몇 차례 젓가락을 옮기더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기초를 닦아 놓지 않아서였는지 첫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 재수를 거쳐 삼수해 간신히 가천대(당시 경원대) 법학과 90학번으로 입학했다.
“‘나 같은 별로 가진 것 없는 사람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자신에게 많이 던졌어요. 앞으로 법률가가 되면 사회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1학년 때 사법시험을 치기로 결심했죠.”
◆어려운 가정 환경…고시원 총무 하며 사시 준비
삼수를 한 터라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사시 공부를 시작했다. 살면서 가장 끈덕지게 책상을 지켰지만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친 사시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때부터 끝없는 고난의 시작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가세가 기울었다. 월셋집에 부은 보증금 1000만원이 온 가족의 전 재산이었다.
공부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당장 입에 풀칠할 돈이 필요했다. 다행히 서울 강남 일대의 고시원에서 총무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지낼 때는 저녁마다 고시 식당에서 일했다. 한 달에 30만, 40만원 받는 게 고작이었지만 밥을 공짜로 먹을 수 있어서 만족했다. 김 회장은 “돈 없는 장수 고시생인 탓에 젊은 나이에 여행 한번 제대로 못해봤다”며 “1차 시험을 어렵게 몇 차례 붙었지만 2차 시험에서 또 떨어져 좌절했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떨어지기를 열한 차례, 2004년 최종 합격자 명단에 그의 이름 세 글자가 올랐다. 그렇게 고대하던 합격자 발표 때도 그는 고시 식당에서 음식물쓰레기를 버리고 있었다.
처음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것은 이재명 성남시장(당시 변호사)의 개인 사무실에서였다. 1년 반 동안 고용 변호사로 일했다. 이 시장이 정치판에 뛰어들면서 사무실을 옮겼지만, 짧은 기간 실무 경험을 다양하게 쌓고 많이 배웠다고 했다. 그 다음은 여느 서초동의 ‘개미 변호사’와 다를 게 없었다. 김 회장은 “민사·형사·이혼·자문 사건 가리지 않고 수임하며 보람 있게 변호사 생활을 했다”며 “일단 법조인이 되고 나니 학력이나 배경에 크게 상관 없이 노력하고 실력을 쌓는 만큼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사법시험 존치해야…공정 사회 지향
칠리새우와 탕수육, 고추잡채 등 인기 요리가 연이어 테이블을 채웠다. 다른 식당에 비해 간을 덜 해서 자극적이지 않았고 고유한 풍미가 느껴졌다. 그 사이 시계추는 현재로 돌아와 있었다. 김 회장은 법조계의 대표적인 ‘사시 존치주의자’다. 지난해 서울지방변호사회 부회장으로 활동할 당시 목소리를 높인 데 이어 회장 선거에서도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사시는 2017년 폐지가 예정돼 있다. 사시 존치에 목숨을 거는 이유를 물으니 “나 같은 사람도 법조인을 할 수 있는 세상이 공정한 세상이라고 믿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로스쿨 체제 아래에서는 나이가 너무 많거나 돈이 없으면 입학할 수 있는 기회부터 박탈당해요. 지방대 출신에, 돈도 백도 없는 저 같은 사람이 로스쿨 체제 아래에서 변호사가 될 수 있었을까요? 로스쿨 제도를 유지하더라도 또 다른 ‘희망의 사다리’를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 단체의 직역 수호…사회적 현안에도 앞장
김 회장은 취임한 지 이제 한 달 남짓이지만 초반부터 속도를 내고 있다. 각종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 변호사 업계의 개혁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서울변회는 최근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현장에 있었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대법관으로 부적절하다는 성명서를 냈다. 신임 회장이 되고 처음으로 서울변회가 낸 성명서였다. 그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개인적으로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하게 된 하나의 계기이기도 했던 사건”이라며 “법원 검찰 문제에 관해서는 변호사 단체가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법조 삼륜의 균형과 견제의 원리에도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내부 징계로 사퇴한 판·검사들의 변호사 신청도 이 같은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김 회장은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대해 “국고 지원을 받으며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가진 시민단체가 법 대상에서 빠진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민간 언론을 적용 대상에 계속 포함시킨다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변호사 단체 역시 적용 대상에 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 생태계 바로 잡을 것”
김 회장은 불법 브로커 등 변호사법 위반 사범들을 고발하는 작업에도 최근 첫발을 뗐다. 김 회장은 ‘사무장 로펌’ 등 전통적인 변호사법 위반 사례도 많지만 최근에는 아예 온라인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몰래 불법 수임 활동을 하는 사범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건 브로커들이 보통 수임료의 40% 가까이를 수수료로 떼가는데 이 때문에 사건 수임료가 올라가고 의뢰인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불법 브로커를 직접 검찰에 고발해 교란된 법조 생태계를 바로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장기적으로 변호사들이 제값을 받고 사건을 수임하고 제대로 일감을 찾을 수 있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앞으로 중소기업 등과 변호사 고문 계약을 연결해주는 등 업계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할 계획이다.
마지막 식사로 짜장면이 나왔다. 김 회장은 면발을 크게 한 젓가락 들면서 웃었다. “이 가게엔 맛있는 중식 메뉴가 많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짜장면을 제일 좋아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가 짜장면을 처음 사줬는데 그 맛을 잊을 수 없어요. 너무 고마워서 그 친구 이름까지 아직 기억할 정도죠.”
그런 고단했던 삶의 경험 때문일까. 학연도 지연도 없지만 그를 지지하는 법조인은 많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유효 투표 7053표 중 2617표(37.1%)를 얻어 후보 5명 가운데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아직도 제가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 같은 사람도 성공할 수 있는 공정한 사회, 국민이 변호사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면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자리에 있든 꾸준히 가다 보면 그런 날이 오겠죠. ‘루저’ 삼미 슈퍼스타즈가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인 넥센 히어로즈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요.” 김한규 회장이 찾은집 레드찹스틱
조개 육수로 간 맞춘 짬뽕…매콤한 닭고기 유린기도 인기
서울 서초동에 있는 레드찹스틱은 법조인들이 자주 찾는 중국 음식 전문 식당이다. 저(低)나트륨을 추구하는 건강한 중식을 표방하고 있다. 대부분 식재료를 당일 가져와 사용하고 특히 해산물류는 주방에 설치한 수족관에 보관해 조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바삭하게 튀긴 닭고기와 매콤한 청양고추, 간장 소스로 양념한 유린기가 대표 메뉴다. 여성이 좋아하는 레몬크림새우도 일품이다. 조개 육수로 간을 맞춘 저염식 짬뽕, 짜장 등도 인기 메뉴다. 유린기 3만원, 레몬크림새우 3만5000원, 삼선짬뽕 8000원, 삼선짜장 6000원. 영업시간은 오전 11시30분~오후 3시30분, 오후 5시30분~10시. (02)525-9287
1907년 출범한 서울辯會
인권 옹호·정의 실현 추구
서울지방변호사회는 1907년 출범해 이면우 변호사가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인권 옹호와 사회 정의 실현을 목적으로 변호사법에 따라 설립됐다. 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법률 지원 사업, 사회공헌 활동, 회원 권익 옹호와 복지 증진, 전문성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 변호사가 20대 회장을 지냈다. 전국의 변호사는 1만8708명으로, 이 중 서울변회 소속이 1만3876명(74.1%)이다.
배석준/정소람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