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하형석 미미박스 대표(오른쪽)와 제리 양 야후 공동 창업자. 미미박스 제공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하형석 미미박스 대표(오른쪽)와 제리 양 야후 공동 창업자. 미미박스 제공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온라인 쇼핑몰에서 운동화를 팔고, 아파트 단지에서 군밤을 팔던 청년이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 2011년 화장품 큐레이션 배달 서비스 미미박스를 창업한 하형석 대표(32)다.

미미박스는 포메이션8 등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로부터 2950만달러(약 330억원)를 투자받았다고 12일 발표했다. 한국을 넘어 미국과 중국에까지 법인을 세워 진출하고 있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주요 투자자로 제리 양 야후 공동 창업자, 페이스북과의 법정 소송으로 유명한 윙클보스 형제, 디즈니와 갭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폴 프레슬러 등이 참여했다.

◆친구 따라 뉴욕 갔다 인생 전환

미미박스에 330억 베팅한 야후 창업자
하 대표는 대학생 때부터 자기 사업을 벌였지만 어느 것 하나 계획적인 것은 없었다. 운동화 쇼핑몰을 연 것도 당시 프리챌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운동화가 매매되는 것을 보고, 비싼 운동화를 싸게 팔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군밤 장사는 한 상자를 팔면 14배의 현금을 남길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 대표 스스로도 “오래 고민하기보다 일단 실행에 옮기고 거기서 무언가를 배우려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미미박스도 여러 우연과 인연이 겹쳐 탄생했다. 시작을 따지자면 군 복무 시 갔던 아프가니스탄 파병부터다. 그때 만난 미군 친구의 초청을 받아 처음 뉴욕에 놀러갔던 하 대표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이미 경희대 환경공학과를 다니고 있었지만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파슨스디자인스쿨에 입학해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무작정 미군 친구네 집에 머무르면서 진학 준비를 했다”며 “원서를 냈더니 생각지도 않게 덜컥 파슨스디자인스쿨에 붙었다”고 설명했다.

미미박스로 이어진 우연과 인연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패션 마케팅으로 2009년 학교를 졸업하고 세계적인 의류브랜드 톰포브의 홍보팀에서 일했던 그는 2010년 한국에 들어왔다. 패션 디자이너들을 도와주는 패션 마케팅 회사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그때 막 창업한 티켓몬스터에서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1주일에 두세 번 티켓몬스터에 가서 패션·뷰티 일을 봐주다 나중엔 티몬 패션뷰티팀장이란 직책도 받았다. 그는 “티몬과 일하면서 소셜커머스란 분야에 눈을 뜨게 됐다”고 말했다.

◆포메이션8 사무실에 얹혀살아

미미박스는 매달 1만6500원의 회비를 내는 회원들에게 한 달에 한 번씩 7만~8만원 상당의 최신 화장품을 모아 상자에 담아 보내준다. 회비보다 더 비싼 화장품을 보낼 수 있는 이유는 화장품 회사에서 제공하는 샘플이기 때문이다. 샘플을 써보고 마음에 드는 이용자는 온라인과 모바일의 미미샵에서 할인된 가격에 해당 화장품을 구입할 수 있다. 현재 미미박스와 제휴한 화장품 브랜드는 1000여곳에 이른다. 대기업에 비해 광고·마케팅 여력이 부족한 중소업체들도 미미박스를 통해 자신들의 화장품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다.

이번 투자도 우연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미미박스가 2013년 말 미국에 진출했을 때 사무실을 구하기 어려워 샌프란시스코의 포메이션8 사무실에 잠시 얹혀살았다. 그때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구본웅 포메이션8 대표의 눈에 들어 이번 투자로까지 이어졌다.

하 대표는 “올해는 1000만 회원 확보와 1000억원 매출이 목표”라고 말했다. 주요 투자자로 참여한 제리 양 야후 공동 창업자는 “미미박스가 제시하는 비전과 비즈니스 모델은 감동적일 뿐만 아니라 데이터에 근거를 둔 견고하고 실현 가능한 것이어서 투자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