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는 겁이 많다. 뒤를 알기 때문이다. 하수는 겁이 없다. 뒤를 모르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선택…'시나리오 플래닝' 짜두라
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웹툰 ‘미생(윤태호 저)’의 한 대목이다. 오늘날 보험산업이 이렇게 발전하게 된 것도 다 앞날에 대한 걱정 때문일 것이다. 유일하게 인간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자의 능력으로 살인사건을 사전에 막는 장면이 나온다. 모두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바람을 담고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요즘처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대, 작년 말에 수립한 2015년 계획을 벌써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공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전혀 모르는 상황. 환경변화 속도가 너무나 빠르고 여러 변수가 복합적으로 엮이는 요즘 불확실성은 커져만 간다. 이 때문에 기업도 미래를 알고 대비하고 싶어 한다.

‘미래를 아는 것은 신의 영역이니 어쩔 수 없다손 쳐도, 대비는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 시나리오플래닝 전략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정유회사인 셸(Shell)이 활용해 큰 성공을 거둔 이후 시나리오플래닝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커졌다. 누구나 석유수급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 자신하던 때 쉘은 ‘석유위기’를 포함한 6개의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정말 ‘석유가 없는’(실제로는 OPEC의 석유 공급 제한조치) 상황이 벌어진 것. 회사가 합병되는 등 대혼란을 겪은 다른 석유회사들과는 달리 셸은 여유가 있었다. 자신들의 시나리오대로 이미 석유공급원을 중동 외 다른 지역으로 다양화하고, 석유 비축량도 늘려 놓았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업계 7위권이었던 셸은 단숨에 2위까지 올라갔다. 이런 사례는 한국에도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경쟁사들은 대부분 손실을 보고 있을 때 SK에너지가 이익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시나리오플래닝 덕분이었다. 두바이 현지에서 석유를 싣고 한국까지 오는 한 달. 이 사이 다양한 유가변동에 따른 시나리오를 세워둔 덕분에 갑작스런 환율변동에도 오히려 환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시나리오플래닝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고 시나리오화해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일까.

먼저 시나리오의 재료가 되는 핵심영향요인을 찾아야 한다. 우리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외부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을 우선순위화하는 것이다. 이때는 위험도와 불확실성이 큰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발생하면 기업에 미치는 위험이 크고, 발생할지 안 할지 몰라 불확실성이 큰 요인이 파급력도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핵심 영향요인을 찾았으면 이 요인들이 극단적인 상황 발생 시 어떻게 작용할지를 예상해 시나리오를 만든다. 일상적인 진폭이 아닌 오일쇼크와 같은 극단적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다. 닥쳤을 때 쉽게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미리 대응전략을 짜 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 시나리오별로 대응전략까지 세웠다. 그러면 다 끝난 것일까.

시나리오플래닝의 실제 효용은 이제부터다. 미래 우리 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영향요인, 평상시 이것을 꾸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 그래서 핵심영향요인이 시나리오처럼 극단으로 가려는 조짐이 보이면 바로 위기를 감지하고 미리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의 시대, 어떤 요인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손 놓고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 그래서 수많은 요인 중 가장 중요한 핵심영향요인을 정해 놓고, 최소한 그것만이라도 예의주시하고 있으면 큰 위험이 닥쳤을 때 덜 당황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시나리오플래닝이다. 미래가 불안하다면 시나리오플래닝으로 위기가 닥치기 전에 조기경보를 날리는 시스템을 갖춰라.

조미나 <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