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12일 기준금리를 종전 연 2.00%에서 1.75%로 인하해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 1%대 시대를 맞았다. 한은의 깜짝 금리인하는 경기회복을 위한 결정이지만 가계부채 증가 등의 부작용도 우려된다.

한은의 이번 기준금리 동결은 경기 반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란 측면이 강하다. 금리를 더 내리면 11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미국이 금리 인상을 앞둔 상황에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질 것이란 분석도 많다.

그럼에도 한은이 금리를 인하한 것은 현재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이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4분기 한국 경제는 전분기 대비 1% 내외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 성장률은 0.4%에 그쳤다.

한은은 작년 4분기의 '성장률 충격'을 딛고 올해 1분기 경기가 반전할 것으로 봤으나 지금까지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1월 산업생산은 전월보다 1.7% 줄었다. 특히 광공업 생산 감소폭(-3.7%)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6년여 만에 가장 컸다. 소비도 3.1% 감소했다.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수출(통관 기준)은 1월과 2월 각각 0.7%, 3.4% 줄었다.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점도 금리인하 배경이다.

올해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5%에 그쳐 3개월째 0%대에 머물렀다. 담뱃값 인상분을 빼면 사상 첫 마이너스(-0.06%) 물가였다.

물가 하락이 다시 경제활동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뜻하는 디플레는 한국 경제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현상이다. 일본이 1990년대부터 장기 불황을 겪으며 겪었던 게 바로 디플레다.

한은뿐만 아니라 전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줄줄이 자국 화폐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디플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통화완화에 나선 상태다.

올 들어 유럽중앙은행(ECB)가 양적완화 결정을 전후로 중국, 인도, 캐나다, 스웨덴, 스위스, 호주 등 18개국이 정책금리를 낮췄다.

주요국의 완화정책으로 유로화·엔화 등 주요국 통화 대비 원화 가치가 오르자 한은도 금리를 낮춰 원화 강세를 완화할 필요성이 커졌다. 국내 기업들의 수출에 '경고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ECB의 완화 정책으로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자 지난 1월 대(對) EU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3% 감소했다. 2월엔 감소 폭이 30.7%로 커졌다. 지난 1월에는 일본에 대한 수출도 19.5% 줄었다.

하지만 이번 금리 인하가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자극해 부진한 경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진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비와 투자가 부진한 것은 구조적 요인 때문이지 금리가 높아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대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높은 가운데 추가 금리 인하의 가장 큰 부작용으로는 가계부채 급증이 꼽힌다.

당장 지난해 단행된 두 차례의 기준금리 인하와 정부의 부동산금융 규제 완화 이후 급증한 가계부채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한층 더 빠르게 늘어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부채의 덫'에 빠져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더욱 제한될 수 있다. 풀린 돈이 소비나 투자로 이어지기보다는 부동산 시장에 몰려 전세가격을 올리고 집값에 거품이 끼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앞둔 상황에서 한은이 섣불리 금리를 내려 자본과 환율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줄어들면서 풀렸던 유동성이 미국으로 환류하기 시작하면 한국 금융시장에서도 자본이 대거 빠져나가 충격이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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