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고교 동기생들이 전하는 '대한민국 아버지'
아버지는 억울하다.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나 가난 속에서 컸고, 처자식 굶기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일했다. 유신체제와 고도 성장기를 지나 군사정권, 민주화 운동, 외환위기 등의 격변을 온몸으로 겪었다. 직장에선 이제 물러나라 하고, 집에서는 외톨이가 된 느낌이다. ‘나, 잘 살아온 걸까’ 자문하며 거울을 보니 머리가 희끗한 중년 사내가 나를 노려본다. 어디로 갔을까 내 청춘은….

《55세 고교 동기들의 58가지 인생이야기》는 대구 월성동에 있는 대건고등학교 28회 졸업생 58명이 쓴 수필집이다. 대개 1960년에 태어나 올해로 만 55세를 맞는다. 교사, 변호사, 의사, 자영업자, 사업가 등 현직에서 활동하는 졸업생을 비롯해 명예퇴직하고 쉬거나 재기를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이들도 있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이사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1997년 외환위기로 사업을 접은 그는 공장의 생산노동자, 폐공장 관리인으로 일하며 재기를 꿈꿨지만 실패한 뒤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온다. 트럭 운전을 시작한 그는 졸음운전을 피하기 위해 머리를 차에 쾅쾅 부딪치고, 길바닥에 주먹을 내리쳐 피가 나기도 한다. 죽기살기로 일한 끝에 그는 보란 듯이 성공했다. 그는 “운명은 나를 정말 힘들게 했지만 그것이야말로 나를 높은 곳에 우뚝 세우게 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하니 참 고맙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이 책의 묘미는 마음을 툭툭 건드리는 진솔함이다. 미려한 단어도, 화려한 수식어도 없다. 다만 지나온 삶을 솔직한 문장으로 보여줄 뿐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곱씹게 된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