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분말형 술
봉지 커피처럼 물에 타 마시는 ‘분말 술’이 미국에서 등장해 화제다. 제조사 립스마크가 최근 미 주류담배과세무역청(TTB)으로부터 분말형 알코올인 ‘팔코올(Palcohol)’ 시판을 허가받아 올 여름 선보인다고 한다. 팔코올은 ‘분말로 된(powdered) 알코올’이란 의미다. 미드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 주인공이 즐겨마시던 코스모폴리탄, 마가리타 등의 칵테일이나 보드카, 럼주를 분말로 만든 것이다.

립스마크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지만 사실 우리나라엔 예부터 분말 술이 있었다. 쌀가루를 수제비처럼 만들어 물에 익혀 식힌 뒤 누룩가루와 엿기름 가루를 버무려 만든다. 여름철 일할 때 물에 진하게 타면 술이고, 묽게 타면 음료수였다. 병도, 마실 것도 귀하던 시절의 휴대용 술인데 지금은 사라졌다고 한다.

근래 한 중소업체가 개발한 가루 막걸리도 있다. 물만 부으면 바로 술이 되진 않고 3~4일 숙성해야 한다. 엄밀히 말해 ‘막걸리용 쌀가루’인 셈이다. 업체는 주류가 아닌 식품으로 허가받아 술을 금지하는 중동에도 반입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음식이나 술을 분말로 만들면 휴대·운반·보관이 쉬워진다. 이런 장점을 십분 활용한 게 몽골 기마대다. 엄청난 기동력으로 세계정복에 나선 데는 비상식량인 ‘보르츠’ 덕이 컸다. 보르츠는 소 말 양 등의 고기를 찢어서 말린 육포다. 보르츠를 빻은 가루를 신축성이 좋은 소나 양의 방광에 넣어 갖고 다니다 물에 풀어 마셨다. 10㎏의 보르츠면 1년치 전투식량이어서 보급문제가 해소된 것이다. 지금도 몽골 사람들은 여행할 때 보르츠를 갖고 다닌다.

냄새가 강한 한국 장류의 분말화도 꾸준히 이어졌다. 대표적인 게 1961년 윤일섭 서울여대 교수가 발명특허를 낸 가루 고추장이다. 고춧가루와 메줏가루, 곰팡이를 섞은 가루 고추장은 베트남 파병 장병과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지급됐다는 당시 보도도 있다. 요즘엔 분말형 된장 청국장 쌈장 등도 있다.

가루 술은 등산, 캠핑족이라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편리성만큼 부작용도 염려된다. 술 반입이 금지된 경기장, 학교, 비행기 등에 몰래 갖고 들어가는 것을 막기 어렵다. 생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음주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청소년들이 손쉽게 술을 접하고 알코올을 과다섭취할 위험도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해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순수 분말 카페인이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한다며 사용을 금한 바 있다. 그런데 분말 알코올은 괜찮을까.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