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호안 미로를 비롯해 프랑스 화가 마리 로랑생·베르나르 뷔페, 독일 A.R 펭크, 미국 팝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 등 유명 화가 18명의 판화와 유화 30여점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16~27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1층 한경갤러리 개관 3주년 특별전으로 펼쳐지는 ‘월드 아트-빛과 색의 왈츠’전이다.
‘월드아트 축제’라는 타이틀을 달고 간간이 열렸던 여느 작품전과는 다르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스타 작가들이 많은 데다, 쉽고 재미있는 작품들이 적지 않아서 일반 관람객들이 세계 미술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다.
전시장에는 현대인의 사고와 산업사회의 단면을 오감으로 풀어낸 작품들이 싱그러운 봄 기운과 아우러져 고졸한 아취를 뿜어낸다.
빠른 필치로 여인의 에로틱한 미감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 마리 로랑생, 순수 미술과 디자인이 혼합된 방식으로 ‘LOVE’를 표현한 로버트 인디애나, 풍부한 색채와 상징적 기호로 꿈과 환상의 세계를 연출한 호안 미로, 서독으로 망명한 뒤 자본주의 세상의 물질 만능주의를 암호와 같은 그림 문자로 형상화한 펭크, 나비를 초현실적으로 그린 달리의 판화가 관람객을 반긴다.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1950년부터 파리에서 활동한 헤수스 라파엘 소토의 옵티컬아트(optical art·기하학적인 추상미술)도 판화로 만날 수 있다. 소토는 신선한 색채의 대비나 선으로 화면을 구성, 보는 사람의 눈에 착시 효과를 일으켜 새로운 이미지를 표현해 내는 추상미술의 대가다. 검정 바탕에 가느다란 흰색의 세로줄 무늬와 빨강 초록 검정의 색면이 어우러진 이번 출품작은 음악적 리듬감과 율동감을 전해준다. 헝가리 옵티컬아트 선구자 빅토르 바자렐리의 바둑판처럼 꾸민 작품도 나와 있다.
세계 화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독일 악셀 크라우제, 중국 왕리나, 일본 무라카미 다카시와 다쓰히토 호리코시 등 유명작가들의 그림도 걸렸다. 동독 할레 출신인 크라우제는 1990년대 말 유럽 화단에서 주목받았던 라이프치히 화파의 대표 작가로 통한다. 새, 사람 등 친숙한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모순되거나 대립되는 요소들을 결합시켜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전시회에는 부엌칼과 도마, 컵 등의 사물들을 조합해 현대사회의 물질 과잉과 인간의 과도한 욕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근작 3점을 내놓았다. 주로 중국 소수 민족들이 사는 아기자기한 풍경을 그리는 왕리나, 아기의 얼굴을 소재로 편견 없는 세상을 은유적으로 잡아내는 다쓰히토, 촛불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묘사한 고지로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이번 전시를 지원한 미술 평론가 김종근 씨는 “대가들의 판화를 망라해 세계 미술사조 흐름을 어느 정도 살필 수 있다”며 “미술 애호가들과 소통을 확장하는 큰 마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