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독일, 흡수통일인가
‘정부, 흡수통일 준비팀 만들었다.’ 조간신문 1면 톱 제목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밝힌 내용이라고 하니 가볍게 넘길 문제도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틈만 나면 북한 정권이 우리를 향해 독일식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독일 통일은 과연 흡수통일인가? 우선 독일에서는 자신들의 통일이 흡수통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다. 통일 과정을 객관적으로 살펴봐도 ‘흡수’라는 용어는 진실과 거리가 멀다. 동독체제를 무너뜨린 것도 동독주민의 주권적 결단이지 서독이 아니다.

1989년 11월8일 체제 붕괴 후 1990년 3월18일 동독주민은 자유선거를 통해 400명의 인민의회를 구성했다. 양독 정부는 통일에 관한 협상을 계속했고 1990년 8월23일 동독의회에서 400표 중 294표의 찬성으로 서독기본법 23조에 의한 통일을 결정했다. 이렇게 통일 과정은 동독주민들의 주권 행사를 통해 민주적으로 이뤄진 것이지 서독에 흡수되는 절차를 밟은 것이 아니다. 다만 통일헌법을 만들지 않고 서독기본법에 편입되는 방식으로 통일을 결정했는데, 이는 빠른 통일을 위해 양독 사이에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통일 후 통합 과정이 추진된 결과 또한 마찬가지다. 10년이 지나자 동독지역 주민의 실질소득이 서독지역 주민의 소득에 90% 이상 접근했다. 어떤 정치, 사회적 보복이나 차별은 존재하지 않았다. 살인 이외에는 서독에 대해 저지른 동독 엘리트들의 모든 범죄가 사면됐다.

최근 일본을 방문해 역사수정주의에 일침을 가한 독일 총리 메르켈은 동독 출신이다. 그는 통일 후 16년 만에 독일의 최고지도자가 돼 10년째 집권하고 있다. 현 독일 대통령 가우크 역시 동독 출신이다. 동독이 서독에 흡수됐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 정권은 독일 통일을 흡수통일로 규정하며 자신들이 대한민국에 흡수돼 보복이나 차별에 직면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다. 이는 오해에 불과하다. 우리의 통일은 남북 주민들의 주권적 결단에 의해 지극히 민주적이고 평화롭게 진행되고, 어떤 보복이나 차별도 배제될 것이다. 북한지역에 대한 개발과 성장은 눈부시게 이뤄져 북한주민의 소득이 빠른 시간에 남한주민의 소득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믿는다. 북한 정권 엘리트들에게도 통일 한국에서 더 큰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독일 통일을 굳이 정의한다면 두 물줄기가 하나로 되는 ‘합류통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통일도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더 큰 한강을 이루는 것과 같은 합류통일이 될 것이다.

이인제 < 새누리당 최고위원·국회의원 ij@assembly.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