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부총리 "협력업체에 적정 대가 지급" 주문에 기업들 '초긴장'…되살아난 '정운찬式 이익공유제' 트라우마
‘경제장관-경제5단체장 간담회’가 열린 지난 13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회의 첫 발언을 통해 ‘임금 인상’을 다시 요청했다. “기업의 적정 임금 인상으로 소비를 진작시켜야 한다”는 게 발언 요지였다. 지난 4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 강연에서 임금 인상을 언급한 이후 한 달 새 다섯 번째다.

그러나 경제계는 이날 최 부총리의 다른 발언에 주목했다. 최 부총리는 “(임금 인상에 더해) 대기업들은 협력업체에 대한 적정 대가 지급 등을 통해 자금이 협력업체로 원활히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주문했다. ‘적정 대가’라는 말이 왜 갑자기 나왔는지, 부총리의 진의(眞意)가 뭔지에 대해 말들이 무성하다.

정부가 ‘협력사 적정 대가 지급’과 관련한 새 정책을 강구 중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2011년 당시 정운찬 국무총리의 ‘초과이익공유제’처럼 경제계를 깜짝 놀라게 할 정책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협력사 적정 대가’ 진의는…

최 부총리는 작년 7월 취임 직후 배당 확대와 임금 인상을 통해 기업 사내유보금이 가계로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의 반발에도 그의 발언은 4개월 뒤 ‘기업소득환류세제’라는 세법이 만들어지면서 현실화됐다.

그런 최 부총리가 ‘임금 인상’을 요청하다가 갑자기 ‘협력사 적정 대가’를 주문하자 기업소득환류세제 도입을 지켜본 경제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최 부총리의 ‘적정 대가’란 말을 들었을 때 ‘초과이익공유제’가 떠올랐다”고 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도 “납품단가를 후려치지 말라는 수준이 아니라 ‘일정 이익을 협력사에 더 줘야 한다’는 뉘앙스를 풍겼다”고 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정은보 기재부 차관보는 이와 관련, “(부총리가) 늘 해왔던 얘기”로 “협력사를 더 배려해야 한다는 뜻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이 매년 초에 정한 목표 이상의 이익을 냈을 때, 이익 초과분을 협력사·하청업체에 나눠주자는 것이다. 정 전 총리는 대기업 초과이익의 일부를 ‘동반성장기금’으로 조성하자는 구체적인 방안도 내놨다. 하지만 재계·학계에서는 ‘반(反)시장적 발상’이란 비판이 쏟아졌고 결국 초과이익공유제 도입은 무산됐다.

◆이익공유제의 징후들

그런데 최근 정부 안팎에서 초과이익공유제와 비슷한 정책 아이디어가 다시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이달 초 발표한 ‘대·중소기업 공동복지기금’ 조성 계획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대기업들은 자사 근로자의 생활 안정, 복지 등에 쓰려고 이익 일부를 출연해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고용부가 추진하는 공동복지기금은 사내근로복지기금처럼 대기업이 협력사·하청업체 근로자를 위해 이익의 일정액을 기금으로 조성하자는 것이다. ‘초과이익’이란 말만 없을 뿐 정 전 총리의 발상과 유사하다.

노사정위원회 산하 노동시장구조개선 특별위원회에선 공익위원들이 협력사·하청 근로자를 위해 대기업이 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기금으로 출연하도록 하자는 의견을 냈다. 재계 관계자는 “최 부총리의 ‘협력사 적정 대가 지급’ 발언은 결국 내수 진작을 위해 대기업이 돈을 더 풀라는 압박”이라며 “대기업 자금을 ‘정부 돈’처럼 여기는 당국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언제든 초과이익공유제가 제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명/김주완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