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연애의 明과 暗
"연애? 저는 회사랑 사귀어요"…알고보니 회사직원과 약혼
"여직원이랑 눈 마주치지마!"…비밀 없는 사생활엔 불만도
같은 부서 사내커플 파혼에 팀 전체가 초상집 분위기
사내 커플은 조심스럽다. 연애 사실이 들통나면 회사 생활이 어렵고, 안 들키게 하자니 개인 생활이 힘들어진다. 가능한 한 끝까지 연애 사실을 숨겨야 한다. 그래도 남 몰래 애틋하게 키우는 몰래 사랑은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큰 특권. 그러나 그 특권 뒤 말 못할 애환이 적지 않다. 직장에서 몰래 사랑을 키워가는 김 과장, 이 대리들의 애환을 들어봤다.
여친 뒷담화를 회사에서 듣고 있자니…
대형 광고업체에서 일하는 여직원 김모 사원은 싹싹한 성격과 빼어난 외모로 사내에서 인기가 많다. 다른 부서에서도 ‘김OO’하면 모두 알 정도로 유명하다. 김씨는 입사 뒤 두 살 연상의 선배와 연애를 하다 헤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다른 부서 박모 대리를 사귀게 됐다.
사귈 땐 몰랐는 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박 대리는 대기업 C사 고위 임원 자제였다. 둘은 현재 결혼까지 약속했다. 문제는 전 남자 친구가 둘 사이를 훼방하고 있다는 것. 전 남친은 김씨와의 연애시절 얘기를 무용담처럼 떠벌리고 다닌다. “차라리 모르면 속이나 편하겠는데 한 회사에서 전 남친과 얼굴을 마주치면서 그런 소문을 들으려니 지옥이 따로 없어요.”
중견 무역업체에 다니는 유모 대리는 2년 연상의 박 과장과 6개월째 연애를 하고 있다. 박 과장은 유 대리 앞에선 귀여운 여자지만 회사에선 일 잘하기로 소문난 ‘똑순이‘다.
문제는 박 과장에 대한 후배들의 불만이 많다는 것. 일 때문에 후배들을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두 사람 관계를 모르는 동기들은 그 앞에서 박 과장을 욕한다. “걔가 뭐라고 할 때마다 귀 따가워 죽겠어.” “일은 잘하지만 여자로서 매력이 없지.” 뒷담화는 끝도 없이 이어지고 유 대리는 말 없이 맥주잔만 들이켰다. “회사 사람들이 여자 친구 험담하는 것을 듣고 있어야 하는 고역은 당해보지 않고는 몰라요.”
가짜 남친까지 만들어 비밀 유지
사내 커플의 최대 난관은 결혼 발표 전까지 어떻게든 비밀을 유지하는 일이다. 오는 5월 결혼을 앞둔 중견 패션업체 정모 사원과 황모 사원이 그런 일로 낭패를 볼 뻔한 경우다. 2년 동안 비밀 연애를 하던 그들은 지난해 밸런타인데이 때 음식점에서 손을 잡고 있다가 직장 선배에게 들켰다. 그 선배에게 선물과 술자리까지 제공하며 겨우 입을 막았지만 직장 동료들의 눈치도 장난이 아니었다. 결국 황모씨는 ‘연막 작전’까지 폈다. 대학 동기 사진을 보여주면서 “내년에 결혼할 남자 친구”라고 소개한 것. 무사히 난관을 통과한 둘은 이제 결혼 사실 공개 날짜를 고르고 있다.
사내 커플 소문이 결코 나쁜 것만도 아니다. 역이용하는 사례도 있다. 서울 여의도의 한 증권사에서 일하는 이모 과장은 최근 노총각 신세에서 벗어났다. 올해 39세의 이 과장은 지난해 입사자인 장모 사원(27)과의 결혼에 성공했다. 사연은 이렇다. 둘은 모두 인천에 산다. 그래서 출퇴근 때 ‘지하철 1호선’을 같이 탔고 많은 얘기를 나눴다.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장 사원도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 무렵, 사내에서는 ‘두 사람이 이미 결혼할 사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장 사원은 속상했지만 이 과장은 이를 적극 활용했다. 그는 홍삼세트를 사들고 예비 장인·장모를 찾아갔고, 결국 솔로 탈출에 성공했다.
퇴사로 이어지는 파경의 결말
사내 커플의 비극은 원치 않는 퇴사다. 유통업체에 근무하는 김 대리는 작년 12월까지만 해도 같은 팀 여직원과 사내 공인 커플이었다. 사귄 지 2년이 넘었고 결혼 날짜까지 잡아둔 상태였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시련이 왔다. 양가에서 혼수를 준비하며 의견이 충돌해 결혼이 깨진 것이다. 김 대리는 필사적으로 파혼을 막으려 했지만 사태를 바로잡지 못했다. 파혼 후 회사 분위기는 초상집이 됐다. 팀장도 이들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업무 지시를 못할 정도였다. 결국 김 대리는 파혼한 지 두 달여 만에 사표를 제출했다. “결혼이 깨진 여자 친구와 회사에서 얼굴을 맞대는 건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주변 사내 연애 커플들은 뜯어말리고 싶어요.”
정보기술(IT) 업체에 다니는 김모 대리는 요즘 회사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부서 후배, 입사 동기와 양다리를 걸쳤다가 들통이 났기 때문이다. 김 대리는 3년 전 입사해 동기 A씨와 연애를 시작했다. 그러나 1년 전 신입사원 B씨가 들어오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이상형에 가까운 B씨를 만난 김 대리가 ‘어차피 현재 연애가 비밀이니 양다리를 걸쳐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적극적인 구애 끝에 B씨와도 연애를 시작했고 동기 A씨와는 헤어졌다. 문제는 술이었다. A씨가 술김에 회사 동료들에게 “김 대리와 사귀다가 최근 헤어졌다”고 털어놨고 B씨도 이 얘기를 듣게 된 것. 배신감을 느낀 B씨는 김 대리에게 결별을 선언했고 그 후 그는 회사에서 양다리를 걸친 파렴치한으로 낙인찍혔다. 김 대리는 현재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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