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계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 스비야토슬라프 리히테르(1915~1997)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피아노 전통의 주류에서 벗어난 기인이다. 거의 독학으로 공부하다가 22세가 돼서야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했다. 그리고 즉시 전설적인 교수들조차 경외감으로 바라보는 천재로 인정받았다. 서방에 알려진 것은 1960년 이후인데, 심오한 성찰에서 체득한 지극히 개성적인 연주가 일품이었다. 비수가 꽂히는 듯한 날카로움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느리게 연주해도 숨이 멎을 듯한 긴장감으로 청중을 몰고 가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성격도 괴팍해 툭하면 콘서트를 취소하곤 했다는데도 그를 미워하는 분위기는 형성되지 않았다.
오는 20일이 그의 탄생 100주년이다. 현대 피아니스트인데도 최상급 음질의 녹음을 많이 남기지 않은 점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