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는 세계적인 규모의 로펌 지사가 모여 있는 유럽 법률 서비스의 허브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정면의 도로를 따라 10분쯤 걸어가면 세계 최대 로펌인 미국계 베이커앤드매켄지가 나오고 역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세계 2위 영국계 DLA파이퍼가 있다. 독일은 1998년 법률시장을 개방한 뒤 현재 상위 20개 로펌 가운데 18곳이 독일계가 아닌 영미계일 정도로 외국 로펌의 비중이 커졌다. 한국의 대(對)미국·유럽연합(EU) 법률시장 완전개방이 1~2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최근 국내 법조계에서도 독일 사례에 대한 관심이 높다.
[FTA 법률시장 3차 개방안 논란] "간판만 바뀔 뿐…변호사업계 잠식 우려는 기우"
한국에서는 “급격한 개방으로 영미계에 잠식당한 독일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최근 법무부 산하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위원회’가 합작 법무법인의 외국 로펌 지분율을 49%로 제한한 것도 이런 우려가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독일 현지에서 만난 변호사들은 이런 우려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개방으로 독일 법률시장이 잠식된 게 아니라 실제로는 시장 규모가 커져 일자리를 찾는 청년 변호사와 법률시장 소비자 등 다수에게 혜택이 돌아갔다는 것이다.

독일 토종 로펌 FPS의 조익재 독일변호사는 “변호사의 소속이 독일계 로펌에서 외국계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독일법 자문은 독일변호사만 한다”며 “세계적 규모의 인수합병(M&A) 등은 법률시장이 개방되든 안 되든 경쟁력이 없으면 못하기 때문에 개방으로 시장이 잠식된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개방으로 기존 대형 로펌의 기득권은 흔들릴 수 있지만 독일변호사 개개인 입장에서는 일자리가 생기고 세계적 로펌의 일원이 되는 등 기회가 많아졌다”며 “한국 법무부의 지분율 제한은 이런 기회를 앗아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이클 매고치 DLA파이퍼 독일사무소 변호사는 “독일 법률시장은 세계적인 규모의 대형 로펌과 특정 분야에 고도로 전문화된 토종 로펌이 적절히 조화돼 있다”며 “대형 로펌에서도 독일변호사가 파트너(주주 격)로 글로벌 로펌과 협력하는 것이지 영미계 로펌에 내수시장을 잃은 게 아니다”고 말했다. 매고치 변호사는 “개방은 특히 독일의 젊은 변호사에게 국제 법률시장 진출이라는 거대한 가능성을 안겨줬다”며 “독일변호사로 25년 이상 일한 경험으로 보건대 개방의 부정적인 부분보다 긍정적인 효과가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영국계 로펌 노턴로즈풀브라이트의 라파엘 서 독일변호사는 “간판이 영미계로 바뀐 곳도 있지만 여기서도 개방 이전의 독일변호사들이 하던 일을 그대로 하고 있다”며 “한국도 법률시장을 개방한다고 해서 한국변호사들이 힘을 잃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 기업이 독일법 자문을 하면 그 나라 지사가 독일사무소에 이를 전달해 처리하기 때문에 오히려 일거리가 더 많아지고 국제화되는 긍정적 효과를 누렸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독일변호사 A씨는 “법률시장 개방이 독일 기업의 외국 진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중소기업은 해외에 나가고 싶어도 각종 제도나 법률적인 환경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못 나가는 일이 많은데 로펌이 글로벌화돼 있으면 원스톱으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A씨는 “법률시장 개방은 기업 입장에서도 안방에 앉아서 외국의 법과 제도를 익히는 좋은 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프랑크푸르트=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