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험로(險路)
기원전 206년 항우는 유방을 파촉(지금의 중국 쓰촨성) 땅으로 내쫓았다. 파촉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군사들이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잔도(棧道)를 따라 겨우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책사 장량은 이 잔도를 태워버렸다. 항우에게 중원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음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몇 년 뒤 대장군 한신이 먼 길을 돌아 초나라를 습격했다. 유방이 결국 패권을 잡게 되는 초한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험로(險路)가 오히려 군사력을 키우는 기회가 된 것은 유방의 후손인 유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촉나라는 전혀 다른 운명을 맞는다. 제갈량까지 죽은 뒤 위나라 장군 등애가 3만명을 이끌고 음평도라는 험로를 넘어 침공해왔다. “등애는 사람이 살지 않는 땅 700여리를 행군했다. 산은 높고 골짜기는 깊어서 군량을 옮기는 일조차 버거웠다. 등애는 천을 몸에 둘둘 만 채 굴러서 산골짜기를 타고 내려갔다.”(위서 등애전)

아무도 넘지 못한 길로 침공한 등애 군에게 촉나라는 항복했다. 험한 길은 오르는 사람에게는 힘이 들지만 그만한 보상이 반드시 있다.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은 최초의 장군인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그랬다. 로마인 누구도 예상 못한 길로 이탈리아에 들어선 한니발 군에게 로마는 멸망의 위기에까지 몰렸다.

요즘에야 익스트림 스포츠라고 해서 아슬아슬한 모험과 묘기에 도전하는 게 프로스포츠로도 각광받고 있지만, 깎아지른 기암절벽에 올라선다는 것은 오금 저리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험한 길로 유명한 스페인의 ‘왕의 오솔길(El Camino Del Rey)’이 오는 26일 다시 개방된다는 소식이다. 20명이나 추락사해서 2000년 폐쇄됐던 이 길은 명성에 비해선 그리 오래된 길이 아니다. 1905년 과달오르세강 협곡에 댐을 건설할 때 근로자들의 물자수송과 이동을 위해 100m 높이에 너비가 1m 남짓되는 7.7㎞짜리 임시도로를 만든 게 시초다. 1921년 스페인 알폰소 13세가 댐의 건설을 축하하기 위해 이 길을 건너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전율을 느끼기 위해 찾는 사람이 끊이질 않자 아예 관광지로 만든 것이다. 한나라, 촉나라의 잔도도 중국을 찾는 사람에게 인기있는 관광지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험해서 더 많이 찾는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인생이라는 것이 알고보면 외롭게 걸어가야 하는 험로 투성이인데 말이다. ‘절벽 위에서 극한체험을 하면 인생의 깊이를 더 깊게 느끼게 되는가 보다’라고 짐작해 볼 뿐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