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비리척결과 김홍섭 판사의 길
대통령부터 국무총리 법무장관 검찰총장까지 ‘부패척결’에 한목소리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비리덩어리’가 갑자기 크게 보이기 시작한 것일까. ‘땅’하고 출발신호가 나기 무섭게 뛰어나가는 달리기 선수들처럼 어떤 정해진 신호에 따라 일제히 움직인다는 느낌마저 준다. 언론들도 덩달아 취재경쟁에 뛰어들었다.

기업의 비리를 척결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다. “비리척결 없이는 경제가 도약하기 어렵다”는 대통령의 말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과거에도 비리척결을 내세운 비슷한 유형의 수사를 많이 봐 왔다. 이번 수사가 유행처럼 때가 되면 되풀이되는 이른바 ‘기획수사’ ‘표적수사’의 전형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부패척결에 사심 없어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열풍에 온 나라가 휩싸였던 불과 얼마 전 모습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위헌소지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법 통과에 찬성표를 던진 국회의원들도 분명 뭔가에 단단히 홀렸던 게 틀림없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더치페이(비용을 각자 부담하는 것)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몇 년 전 연수를 위해 방문한 일본 게이오대에서 크게 무안을 당할 뻔한 적이 있다. 일본인 교수가 식사를 함께하자고 하길래 지갑을 챙길 생각도 않고 약속 장소인 교수식당에 갔다. 그런데 그 교수는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태연하게 꺼내놓고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게 아닌가. 주머니 안에 있던 500엔짜리 동전 몇 개가 나의 체면을 겨우 살렸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진땀이 난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몇 차례 더치페이를 시도해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자기 아내조차도 ‘우리 아내’라고 소개하는 한국 사람 정서상 더치페이는 시기상조라는 생각이다.

부패척결이든 김영란법이든 명분에 누가 반대하겠나. 하지만 법 하나 만들었다고 해서 사회 일반의 관행이나 정서를 하루아침에 바꾸려는 것은 무리다. 게다가 수사가 정말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됐는지,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심이 개입됐는지 여부가 깔끔하지 않을 때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제도보다 인간애를 우선해야

사도법관 김홍섭(1915~1965) 50주기 추모행사가 지난 16일 서울고등법원 주최로 열렸다. 변호사, 검사에 이어 서울고등법원장까지 지낸 김 판사는 김병로 선생, 최대교 선생과 함께 한국의 3대 법조인으로 꼽힌다.

그는 “인간이 어떻게 인간을 재판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직무상 사형판결을 내린 뒤에도 교도소로 수형자들을 찾아 위로하며 친구가 되어줘 ‘사형수의 대부’라는 별칭도 얻었다. 무상을 넘어서라는 책에서는 ‘법을 장난감 딱총처럼 휘두르면서 때때로 세간을 놀래 주는 사람’ ‘법을 빨간 넥타이처럼 속에 달고서 장식에 이용하는 사람’을 꾸짖었다.

가톨릭계 등에서 김 판사를 예수의 12사도처럼 사도(使徒)의 반열까지 올려 존경을 표하는 것은 제도적인 틀을 뛰어넘은 그의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김 판사는 ‘국가주의’를 가장 싫어했다. “국가주의는 국가와 민족을 인간의 위에 놓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부패척결도 김영란법도 김 판사에게서 해법을 구했으면 한다.

김병일 지식사회부 차장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