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세르반테스와 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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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스페인 마드리드의 돈키호테 동상은 의외로 평범했다. 긴 창을 들고 말에 오른 그의 곁으로 나귀를 탄 산초 판사의 모습도 보였지만 소설 속의 해학적인 면모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 뒤로는 높다란 원주 위에서 이들을 내려다보는 세르반테스 조각상이 앉아 있다. 오른손엔 책을 들고 있다. 그런데 왼손은 옷으로 가려져 있다. 왜?
그제서야 레판토 해전이 생각났다.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인이나 성직자가 되기를 꿈꿨다. 스물세 살 때인 1570년 이탈리아 추기경을 따라 로마로 간 그는 군인이 됐다. 이듬해 터키 오스만제국 함대와 맞붙은 레판토 해전에 참가했다. 그 싸움에서 세 발의 총탄을 맞았다. 가슴에 맞은 두 발은 급소를 비켜갔지만 왼팔은 평생 쓸 수 없게 됐다.
그의 인생은 격랑 속의 난파선 같았다. 건강을 회복한 뒤에도 스페인 왕에게 보내는 추천장을 지니고 귀국하다 해적들에게 잡혀 알제리에서 5년간이나 노예생활을 해야 했다. 그가 지닌 추천장 때문에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바람에 잡혀 있는 기간도 길어졌다. 네 번이나 탈출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해 더 모진 고통을 받았다.
어렵게 사는 가족들이 백방으로 뛰며 푼돈을 모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던 삼위일체 탁발수녀원도 애가 탔다. 결국 수녀들은 주변 상인들에게 도움을 청한 끝에 간신히 추가 금액을 마련해 그를 구해냈다. 그가 이스탄불로 강제 이송되기 직전이었다.
이 드라마틱한 사건 이후 그는 수녀원 일이라면 무엇이든 발벗고 나섰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재속회원으로도 가입했다. 필생의 역작인 ‘돈키호테’를 완간한 이듬해인 1616년 68세로 숨진 그는 유언에 따라 이곳에 묻혔다. 수녀원 지하에 그의 부인도 함께 묻혔다. 그러나 그의 묘지는 수녀원 확장 공사와 재건축이 이어지면서 4세기 동안 잊혔다.
지난해부터 유골발굴팀에 의해 그의 흔적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저께 수녀원 지하에서 부서진 왼팔뼈와 총알에 손상된 가슴뼈, 6개밖에 남지 않았다고 기록된 치아 등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숨진 지 399년, ‘돈키호테’를 완간한 지 400년 만이다.
궁핍을 벗기 위해 군인과 성직자의 길을 원했던 그가 전장에서 얻은 것은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비록 죽어서라도 그를 구해준 수녀원 울타리 안에서 영원히 잠들 수 있었으니 한 가지 소원은 이룬 셈일까. 낡은 돈키호테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예견했던 오! 세르반테스여.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그제서야 레판토 해전이 생각났다.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인이나 성직자가 되기를 꿈꿨다. 스물세 살 때인 1570년 이탈리아 추기경을 따라 로마로 간 그는 군인이 됐다. 이듬해 터키 오스만제국 함대와 맞붙은 레판토 해전에 참가했다. 그 싸움에서 세 발의 총탄을 맞았다. 가슴에 맞은 두 발은 급소를 비켜갔지만 왼팔은 평생 쓸 수 없게 됐다.
그의 인생은 격랑 속의 난파선 같았다. 건강을 회복한 뒤에도 스페인 왕에게 보내는 추천장을 지니고 귀국하다 해적들에게 잡혀 알제리에서 5년간이나 노예생활을 해야 했다. 그가 지닌 추천장 때문에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바람에 잡혀 있는 기간도 길어졌다. 네 번이나 탈출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해 더 모진 고통을 받았다.
어렵게 사는 가족들이 백방으로 뛰며 푼돈을 모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던 삼위일체 탁발수녀원도 애가 탔다. 결국 수녀들은 주변 상인들에게 도움을 청한 끝에 간신히 추가 금액을 마련해 그를 구해냈다. 그가 이스탄불로 강제 이송되기 직전이었다.
이 드라마틱한 사건 이후 그는 수녀원 일이라면 무엇이든 발벗고 나섰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재속회원으로도 가입했다. 필생의 역작인 ‘돈키호테’를 완간한 이듬해인 1616년 68세로 숨진 그는 유언에 따라 이곳에 묻혔다. 수녀원 지하에 그의 부인도 함께 묻혔다. 그러나 그의 묘지는 수녀원 확장 공사와 재건축이 이어지면서 4세기 동안 잊혔다.
지난해부터 유골발굴팀에 의해 그의 흔적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저께 수녀원 지하에서 부서진 왼팔뼈와 총알에 손상된 가슴뼈, 6개밖에 남지 않았다고 기록된 치아 등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숨진 지 399년, ‘돈키호테’를 완간한 지 400년 만이다.
궁핍을 벗기 위해 군인과 성직자의 길을 원했던 그가 전장에서 얻은 것은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비록 죽어서라도 그를 구해준 수녀원 울타리 안에서 영원히 잠들 수 있었으니 한 가지 소원은 이룬 셈일까. 낡은 돈키호테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예견했던 오! 세르반테스여.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