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임채운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교수 출신 이사장' 소리 듣기 싫어 밤 꼬박 새워 일한 적 많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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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팔아가며 오른 미국 유학길…부잣집 아들로 오해받기도"
어머니 희생으로 딴 美 MBA
첫 직장 그만 두고 유학 결심
남대문서 옷장사하던 어머니
유학비 마련 위해 집까지 팔아
“중소기업, 해외로 눈 돌려라”
‘생계형’ 안주하는 기업들 많아
경쟁력 없으면 내수도 ‘흔들’
맞춤 전략으로 현지 공략해야
임채운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 이사장은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출신이다. 지난 1월19일 중진공 이사장으로 왔다. 중진공이 설립된 지 36년 만에 처음 나온 교수 출신 이사장이다. 임 이사장은 “정책 수립 기관이 아니라 집행 기관에 교수가 온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실무를 잘 모르는 교수 출신 이사장’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밤을 꼬박 새워 자료를 보거나 일을 한 적이 많다고 했다. 동석한 이창섭 중진공 홍보실장은 “새벽 4시, 5시에도 이메일을 보낸다”고 거들었다.
취임 두 달을 맞은 임 이사장을 서울 마포 공덕동에 있는 한정식집 호정에서 만났다. 10여년 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시절 사외이사로 일하던 한 증권회사 대표 소개로 이 집을 처음 찾았다고 했다.
○옷장수 아들에서 중진공 수장으로
자리에 앉으니 막걸리 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임 이사장은 “호정에서 유명한 것이 빛깔이 곱고 목 넘김이 좋은 덕산막걸리”라고 소개했다. 건배사를 부탁했다. 그는 “중진공이 그동안 중소기업의 안전판 역할을 했다면 이젠 성장판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성장판이라고 선창하면 안전판이라고 후창해 달라”고 제안했다. 자신이 만들었다고 했다. 마케팅 전문가답게 조직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지를 건배사에 분명히 담아 전달했다. 건배사와 함께 덕산막걸리 한 모금을 입에 넣으니 달큰하면서도 산뜻한 맛이 느껴졌다.
기본 반찬으로 굴무침과 제철 나물인 취나물, 직접 농사 지은 고추·배추로 담근 김치가 상에 올랐다. 임 이사장은 “이 집은 나물이 특히 좋다”며 “채운이란 내 이름도 나물 채(菜)에 구름 운(雲)자를 쓴다”고 소개했다. 이어 빈대떡과 피조개 오이무침이 나왔다. 빈대떡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식감이 좋았고, 아삭한 오이와 쫄깃한 피조갯살이 어우러진 초무침과도 잘 어울렸다.
그는 오래전 얘기를 시작했다. 임 이사장은 무역학을 전공한 뒤 대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세계를 누비며 물건을 파는 상사맨이 그의 꿈이었다. 하지만 좀 더 큰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1983년 유학 자유화가 됐고 국내에 MBA(경영학 석사) 붐이 불기 시작했다”며 “무언가에 이끌려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유학비 마련을 위해 집을 팔았다. 임 이사장은 “한 살 때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뒤 남대문시장에서 의류 도매를 하며 남매를 키운 어머니의 힘으로 유학까지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 말을 이어갔다. “미시간대에서 MBA를 따고 나니 공부를 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돈은 없고 공부는 더 하고 싶어 학비를 면제받고 생활비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미국 미네소타대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귀국 후 그는 국민대 마케팅 전공 교수로 채용됐다.
○“중소기업 자생력 키워야”
임 이사장은 존경하는 중소기업인으로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을 꼽았다. 그는 “최 회장은 동대문에서 바지를 팔 때부터 브랜드와 마케팅의 위력을 알고 자기 브랜드 제품을 팔아 소상인에서 출발해 중견기업을 일군 대표적인 기업인”이라고 말했다. 임 이사장이 시장 상인 아들인 것을 안 뒤부터는 ‘아우’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대한다고 했다.
굴전과 더덕 메밀말이가 차례로 상에 올랐다. 임 이사장은 더덕 메밀말이를 권했다. 부드러운 더덕을 메밀전으로 감싼 음식이었다. 더덕의 알싸한 향을 그대로 느끼기 위해 장을 찍지 말고 그냥 먹으라고 했다. 술이 한 잔 한 잔 들어가자 임 이사장은 자신의 경험담과 생각을 거침없이 털어놨다.
임 이사장은 교수생활을 하면서 삼성 LG 등 대기업과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제조·유통 분야 기업에 자문과 외부 강의를 많이 했다. 2012년 중소기업학회장을 지낸 뒤 동반성장위원회 위원 및 적합업종 공익위원, 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 위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비상임이사 등을 맡으며 ‘유통해결사’란 별명도 얻었다.
그는 “나는 누구 편도 아니다. 학자로서 시장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일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정부 지원에 안주해 내수시장과 조달 등 관수시장에 의존하는 중소기업, 소상공인에게 쓴소리도 많이 했다”고 했다. 성장을 위해선 수출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는 “330만개 중소기업 중 수출기업은 8만5000개에 불과한 게 현실”이라고도 했다.
현안 얘기가 나온 김에 적합업종에 대해 물었다. 임 이사장은 “적합업종 공익위원으로 참여하며 배운 것이 많다”며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게 울타리를 쳐준 뒤엔 우선 중소기업이 울타리 안에서 스스로 경쟁하고, 정부도 경쟁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하는데 각각의 정책이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얘기가 이어지는데 아롱사태 수육이 나왔다. 임 이사장은 따뜻할 때 먹어야 한다며 먼저 한 점 집었다. 잠시 한숨을 돌린 뒤 임 이사장은 한국 산업의 근본적 문제를 지적했다. “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소기업, 대기업 할 것 없이 모두 아직 생계형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생계형이란 말은 자신의 이익 외에는 아무것도 돌아볼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또 “중소기업도 경제의 짐이 될지 자산이 될지의 기로에 서 있다”고 했다.
임 이사장은 “생계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산은 기업가 정신”이라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내수시장에서도 망한다는 위기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케팅 핵심은 ‘현지화’
안주가 떨어져갈 즈음 홍어애(간) 조림이 나왔다. 짭조름한 간장이 비린 맛을 잡아줬다. 귀한 음식이라며 조림을 한 조각 입에 넣은 뒤 임 이사장은 말을 이어갔다. 그는 “중소기업의 자생력 강화와 글로벌화를 목표로 세웠다”고 했다. “중소기업도 대기업 탓, 소비자 탓, 정부 탓, 전문가 탓, 남 탓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자생력을 갖추고 세계로 나가기 위해 그는 적극적인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중진공이 앞장서 돕겠다는 얘기였다. 구체적 방법도 제시했다. “세계 모든 시장에 통하는 상품이 아니라 특정한 국가 등 좁은 시장을 깊게 파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 중소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는 “진정한 마케팅은 상술이 아닌 상도”라며 “광고 판촉행사 등으로 소비자를 현혹할 수 있는 것은 일시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일을 해야 하는 중진공에 대해 임 이사장은 “전국노래자랑처럼 노래는 잘하는데 TV에 나갈 기회를 못 잡고 있는 지역의 선수들을 발굴해 외모 경쟁력도 키워주고 그룹으로 만들기도 하면서 내수 스타를 글로벌 스타로 키우는 기획사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고 정의했다.
○“중진공, 자생력 갖춘 조직으로”
끝으로 칼국수가 나왔다. 담백했다. 임 이사장은 내부 조직의 혁신에 대해서도 말했다. “경영학자로서 조직의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 중진공도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는 최근 조직을 정비하고, 경영 효율화를 위해 ‘독수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경영혁신TF라고 하면 왠지 식상한 것 같아 솔개 우화에서 이름을 빌려왔다”고 했다. 우화의 내용은 이렇다. 솔개의 수명은 평균 30년이다. 그러나 60년을 사는 솔개도 있다. 이 솔개는 30년이 지나면 스스로 발톱을 뽑고, 무거워진 털을 뽑아내 새로운 30년을 산다는 것이다.
“조직을 완전히 바꿔놓는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짓다가 솔개보다 독수리가 더 있어 보여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설명했다. 이 TF는 6월까지 가동된다. 임 이사장은 “지원하는 중소기업이 성공하면 인센티브를 부여할 수 있도록 성과 평가·보상 시스템을 통째로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 임채운 이사장이 찾은 집 호정
사장이 모든 반찬 직접 만들어…붕어찜·굴전 등 제철 요리 ‘풍성’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한정식당 호정은 서울서부지방법원 옆 길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보이는 한옥을 개조해 만든 식당이다. 모든 반찬을 전북 고창 출신 사장이 직접 만든다. 조미료를 쓰지 않고 가족이 먹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조리해 정갈하고 담백하다.
저녁상은 1인당 4만원, 5만원, 7만원 세 종류다. 7만원상은 전복구이 풍산장어 등 고급 재료를 쓴다. 단골손님이 많아 주문 요리도 한다. 손님의 기호에 맞춰 홍어찜, 붕어찜, 민어회, 광어회, 굴무침, 굴전, 동태전 등 다양한 제철 요리를 내놓는다.
점심상은 1인당 3만원, 4만원 두 종류다. 우거지, 산나물 등 나물과 직접 재배한 고추, 배추로 담근 김치 등 기본 반찬에 배추전, 주꾸미숙회, 낙지볶음 등을 곁들인다. 하루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 (02)702-5945
■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중소기업 진흥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1979년 1월 설립된 금융형 준정부기관이다. 주요 사업은 정책자금 지원, 중소기업 진단· 컨설팅, 신제품 개발과 해외 마케팅 지원, 청년창업사관학교를 통한 연수 등이다.
■ 임채운 이사장
△1957년 경기 의정부시 출생 △1980년 서강대 경상대학 무역학과 졸업 △1985년 미시간대 경영학 석사(MBA) △1991년 미네소타대 경영학 박사 △1992년 국민대 경영학과 조교수 △1995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2007년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 원장 △2007년 한국유통학회 회장 △2012년 한국중소기업학회 회장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
첫 직장 그만 두고 유학 결심
남대문서 옷장사하던 어머니
유학비 마련 위해 집까지 팔아
“중소기업, 해외로 눈 돌려라”
‘생계형’ 안주하는 기업들 많아
경쟁력 없으면 내수도 ‘흔들’
맞춤 전략으로 현지 공략해야
임채운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 이사장은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출신이다. 지난 1월19일 중진공 이사장으로 왔다. 중진공이 설립된 지 36년 만에 처음 나온 교수 출신 이사장이다. 임 이사장은 “정책 수립 기관이 아니라 집행 기관에 교수가 온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실무를 잘 모르는 교수 출신 이사장’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밤을 꼬박 새워 자료를 보거나 일을 한 적이 많다고 했다. 동석한 이창섭 중진공 홍보실장은 “새벽 4시, 5시에도 이메일을 보낸다”고 거들었다.
취임 두 달을 맞은 임 이사장을 서울 마포 공덕동에 있는 한정식집 호정에서 만났다. 10여년 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시절 사외이사로 일하던 한 증권회사 대표 소개로 이 집을 처음 찾았다고 했다.
○옷장수 아들에서 중진공 수장으로
자리에 앉으니 막걸리 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임 이사장은 “호정에서 유명한 것이 빛깔이 곱고 목 넘김이 좋은 덕산막걸리”라고 소개했다. 건배사를 부탁했다. 그는 “중진공이 그동안 중소기업의 안전판 역할을 했다면 이젠 성장판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성장판이라고 선창하면 안전판이라고 후창해 달라”고 제안했다. 자신이 만들었다고 했다. 마케팅 전문가답게 조직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지를 건배사에 분명히 담아 전달했다. 건배사와 함께 덕산막걸리 한 모금을 입에 넣으니 달큰하면서도 산뜻한 맛이 느껴졌다.
기본 반찬으로 굴무침과 제철 나물인 취나물, 직접 농사 지은 고추·배추로 담근 김치가 상에 올랐다. 임 이사장은 “이 집은 나물이 특히 좋다”며 “채운이란 내 이름도 나물 채(菜)에 구름 운(雲)자를 쓴다”고 소개했다. 이어 빈대떡과 피조개 오이무침이 나왔다. 빈대떡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식감이 좋았고, 아삭한 오이와 쫄깃한 피조갯살이 어우러진 초무침과도 잘 어울렸다.
그는 오래전 얘기를 시작했다. 임 이사장은 무역학을 전공한 뒤 대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세계를 누비며 물건을 파는 상사맨이 그의 꿈이었다. 하지만 좀 더 큰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1983년 유학 자유화가 됐고 국내에 MBA(경영학 석사) 붐이 불기 시작했다”며 “무언가에 이끌려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유학비 마련을 위해 집을 팔았다. 임 이사장은 “한 살 때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뒤 남대문시장에서 의류 도매를 하며 남매를 키운 어머니의 힘으로 유학까지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 말을 이어갔다. “미시간대에서 MBA를 따고 나니 공부를 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돈은 없고 공부는 더 하고 싶어 학비를 면제받고 생활비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미국 미네소타대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귀국 후 그는 국민대 마케팅 전공 교수로 채용됐다.
○“중소기업 자생력 키워야”
임 이사장은 존경하는 중소기업인으로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을 꼽았다. 그는 “최 회장은 동대문에서 바지를 팔 때부터 브랜드와 마케팅의 위력을 알고 자기 브랜드 제품을 팔아 소상인에서 출발해 중견기업을 일군 대표적인 기업인”이라고 말했다. 임 이사장이 시장 상인 아들인 것을 안 뒤부터는 ‘아우’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대한다고 했다.
굴전과 더덕 메밀말이가 차례로 상에 올랐다. 임 이사장은 더덕 메밀말이를 권했다. 부드러운 더덕을 메밀전으로 감싼 음식이었다. 더덕의 알싸한 향을 그대로 느끼기 위해 장을 찍지 말고 그냥 먹으라고 했다. 술이 한 잔 한 잔 들어가자 임 이사장은 자신의 경험담과 생각을 거침없이 털어놨다.
임 이사장은 교수생활을 하면서 삼성 LG 등 대기업과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제조·유통 분야 기업에 자문과 외부 강의를 많이 했다. 2012년 중소기업학회장을 지낸 뒤 동반성장위원회 위원 및 적합업종 공익위원, 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 위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비상임이사 등을 맡으며 ‘유통해결사’란 별명도 얻었다.
그는 “나는 누구 편도 아니다. 학자로서 시장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일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정부 지원에 안주해 내수시장과 조달 등 관수시장에 의존하는 중소기업, 소상공인에게 쓴소리도 많이 했다”고 했다. 성장을 위해선 수출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는 “330만개 중소기업 중 수출기업은 8만5000개에 불과한 게 현실”이라고도 했다.
현안 얘기가 나온 김에 적합업종에 대해 물었다. 임 이사장은 “적합업종 공익위원으로 참여하며 배운 것이 많다”며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게 울타리를 쳐준 뒤엔 우선 중소기업이 울타리 안에서 스스로 경쟁하고, 정부도 경쟁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하는데 각각의 정책이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얘기가 이어지는데 아롱사태 수육이 나왔다. 임 이사장은 따뜻할 때 먹어야 한다며 먼저 한 점 집었다. 잠시 한숨을 돌린 뒤 임 이사장은 한국 산업의 근본적 문제를 지적했다. “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소기업, 대기업 할 것 없이 모두 아직 생계형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생계형이란 말은 자신의 이익 외에는 아무것도 돌아볼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또 “중소기업도 경제의 짐이 될지 자산이 될지의 기로에 서 있다”고 했다.
임 이사장은 “생계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산은 기업가 정신”이라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내수시장에서도 망한다는 위기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케팅 핵심은 ‘현지화’
안주가 떨어져갈 즈음 홍어애(간) 조림이 나왔다. 짭조름한 간장이 비린 맛을 잡아줬다. 귀한 음식이라며 조림을 한 조각 입에 넣은 뒤 임 이사장은 말을 이어갔다. 그는 “중소기업의 자생력 강화와 글로벌화를 목표로 세웠다”고 했다. “중소기업도 대기업 탓, 소비자 탓, 정부 탓, 전문가 탓, 남 탓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자생력을 갖추고 세계로 나가기 위해 그는 적극적인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중진공이 앞장서 돕겠다는 얘기였다. 구체적 방법도 제시했다. “세계 모든 시장에 통하는 상품이 아니라 특정한 국가 등 좁은 시장을 깊게 파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 중소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는 “진정한 마케팅은 상술이 아닌 상도”라며 “광고 판촉행사 등으로 소비자를 현혹할 수 있는 것은 일시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일을 해야 하는 중진공에 대해 임 이사장은 “전국노래자랑처럼 노래는 잘하는데 TV에 나갈 기회를 못 잡고 있는 지역의 선수들을 발굴해 외모 경쟁력도 키워주고 그룹으로 만들기도 하면서 내수 스타를 글로벌 스타로 키우는 기획사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고 정의했다.
○“중진공, 자생력 갖춘 조직으로”
끝으로 칼국수가 나왔다. 담백했다. 임 이사장은 내부 조직의 혁신에 대해서도 말했다. “경영학자로서 조직의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 중진공도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는 최근 조직을 정비하고, 경영 효율화를 위해 ‘독수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경영혁신TF라고 하면 왠지 식상한 것 같아 솔개 우화에서 이름을 빌려왔다”고 했다. 우화의 내용은 이렇다. 솔개의 수명은 평균 30년이다. 그러나 60년을 사는 솔개도 있다. 이 솔개는 30년이 지나면 스스로 발톱을 뽑고, 무거워진 털을 뽑아내 새로운 30년을 산다는 것이다.
“조직을 완전히 바꿔놓는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짓다가 솔개보다 독수리가 더 있어 보여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설명했다. 이 TF는 6월까지 가동된다. 임 이사장은 “지원하는 중소기업이 성공하면 인센티브를 부여할 수 있도록 성과 평가·보상 시스템을 통째로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 임채운 이사장이 찾은 집 호정
사장이 모든 반찬 직접 만들어…붕어찜·굴전 등 제철 요리 ‘풍성’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한정식당 호정은 서울서부지방법원 옆 길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보이는 한옥을 개조해 만든 식당이다. 모든 반찬을 전북 고창 출신 사장이 직접 만든다. 조미료를 쓰지 않고 가족이 먹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조리해 정갈하고 담백하다.
저녁상은 1인당 4만원, 5만원, 7만원 세 종류다. 7만원상은 전복구이 풍산장어 등 고급 재료를 쓴다. 단골손님이 많아 주문 요리도 한다. 손님의 기호에 맞춰 홍어찜, 붕어찜, 민어회, 광어회, 굴무침, 굴전, 동태전 등 다양한 제철 요리를 내놓는다.
점심상은 1인당 3만원, 4만원 두 종류다. 우거지, 산나물 등 나물과 직접 재배한 고추, 배추로 담근 김치 등 기본 반찬에 배추전, 주꾸미숙회, 낙지볶음 등을 곁들인다. 하루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 (02)702-5945
■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중소기업 진흥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1979년 1월 설립된 금융형 준정부기관이다. 주요 사업은 정책자금 지원, 중소기업 진단· 컨설팅, 신제품 개발과 해외 마케팅 지원, 청년창업사관학교를 통한 연수 등이다.
■ 임채운 이사장
△1957년 경기 의정부시 출생 △1980년 서강대 경상대학 무역학과 졸업 △1985년 미시간대 경영학 석사(MBA) △1991년 미네소타대 경영학 박사 △1992년 국민대 경영학과 조교수 △1995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2007년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 원장 △2007년 한국유통학회 회장 △2012년 한국중소기업학회 회장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