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서 배워야 할 교훈
‘눈을 뜬다. 요리해서 먹어야 할 세끼의 메뉴를 받아 든다. 쉽지 않다. 재료부터 직접 구해야 한다. 도구는 한정돼 있다. 불도 직접 피워야 한다. 출연자는 당황한다. 그러다 곧 역할을 나눈다. 식사 재료는 아빠 역의 출연자가 담당한다. 그는 재료를 구하러 떠난다. 그 사이 엄마 역할 출연자는 요리준비 태세를 갖춘다. 아들 역의 출연자는 그런 엄마와 아빠 사이를 오가며 심부름한다. 시간이 흐르고 아빠는 원하던 식재료를 구하지 못해 미안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온다. 그런 아빠를 다른 가족은 타박하지 않는다. 고생했다고 따뜻하게 위로한다. 그러고는 소박한 식사를 함께 나누며 서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준다. 처음의 서먹함은 사라지고 인간적인 관계가 깊어진다. 그 관계로 다음날 더 어려운 메뉴를 척척 해낸다.’ 최근 방송가에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tvN 프로그램 ‘삼시세끼’의 일상적인 광경이다.

이 모습은 우리 기업의 생활과 닮아있다. 어려운 목표에도 자원은 늘 부족하고,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면 더 힘든 목표가 주어지며, 팀원들이 당황하는 부분까지는 똑같다. 하지만 이후부터 우리 기업에서는 삼시세끼와 다른 모습이 벌어지곤 한다.

부족한 환경에 대해 불평불만을 한다. 쉽고 편안한 일만 원해 역할 배분에 어려움을 겪는다.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위로하고 격려하기보다는 질책하고 타박한다. 작은 성과에서 얻은 성공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다. 성과가 났다 싶으면 누군가가 그 과실을 독차지한다. 일원으로서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니 팀워크는 허약해진다. 작은 성과를 성공 경험으로 공유하지 못하고 책임감에 시달린다. 생활은 재미 없어지고 성공은 점차 멀어질 뿐이다.

‘삼시세끼’의 상황과 내용, 사람이 주체라는 것까지 똑같은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삼시세끼에서 배울 점은 무엇일까.

먼저 환경에 대한 수용이다. 삼시세끼 출연자들은 열악한 환경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주어진 목표를 이루는 데 필요한 자원과 도구가 턱없이 부족해도 불평불만이 없다,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서로가 합심해 창의적인 솔루션을 만들어낸다. 이 점을 먼저 배워야 한다. 그 어떤 기업도 목표 달성에 필요한 자원과 도구가 완벽히 갖춰진 곳은 없기 때문이다. 경영자는 모든 구성원이 부족한 환경을 적극 받아들이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생각해야 한다.

둘째는 충실한 역할 배분이다. 삼시세끼는 소위 적재적소에서 열악한 환경을 극복한다. 모두 다 빛나는 역할을 해야 인기를 얻는 연예인들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역량에 따라 역할을 분담한다. 그것도 스스로 결정한다. 그러다 보니 빛나지 않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주어진 목표는 달성되고 대중은 모든 캐릭터를 사랑한다. 기업의 역할에서도 빛이 나는 것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적소에 적재를 배치하는 좋은 방법의 하나를 삼시세끼에서 배울 수 있다. 그것은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시간은 다소 걸릴 수 있지만 효과를 생각하면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사람도 위로하고 격려하는 팀워크다. 목표 요리에 반드시 필요한 재료를 구하지 못해도 탓하지 않는다. 고생하는 현장을 찾아 따뜻한 식사로 위로하고 성과가 없어도 격려한다. 이런 팀워크가 어려운 목표를 성취하게 하고, 그런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던 대중은 따뜻한 시청률로 보답해 줬다. 삼시세끼 출연자는 짧은 시간 동안 인위적으로 엮어진 관계임에도 서로를 위한다. 하물며 장시간 함께 해야 하는 우리 기업의 인간관계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삼시세끼는 기존 예능프로그램과 다른 전략으로 대박을 쳤다. 포맷의 창의성은 물론 구성과 내용에서 기존과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가장 중요한 차별점은 그 중심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출연자는 물론이고 말단 스태프까지 자발적인 헌신성을 끌어낸 결과물이었다.

박기찬 <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