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자금을 대출해 준다고 속여 전세난에 시달리는 서민들을 보이스피싱 1회용 인출책으로 만드는 사기가 잇따르고 있다.

19일 서울 강동경찰서에 따르면 서울 광진구에 사는 이모씨(70)는 지난 6일 갑작스레 'B대부'란 업체로부터 신용등급을 올려 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회삿돈으로 인위적인 거래실적을 쌓아줄 테니 신용등급이 올라 원하는 만큼 대출을 받게 되면 대출금의 3%를 수수료로 지급하라는 제안이었다.

결혼을 앞둔 아들에게 전셋집을 마련해줘야 하지만 대출이 쉽지 않아 마음을 졸이던 이씨는 사흘 뒤인 9일 오전 동작구 이수역앞 커피숍에서 B대부 직원이라는 '김 대리'를 만나 계약서를 작성했다.

김 대리는 이씨에게 "거래실적을 쌓기 위해 통장에 회삿돈을 넣어줄 테니 출금을 해 오라"고 지시했고, 이씨는 이후 이틀간 7차례에 걸쳐 자신의 통장에 들어온 1억6900만원을 인출해 김 대리에게 넘겼다.

하지만 이것은 순진한 서민을 '1회용 인출책'으로 써먹으려는 보이스피싱 사기단의 함정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김 대리 일당에 속아 보이스피싱 인출책 역할을 하게 된 이들은 4명이 더 있었다.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11일까지 불과 보름여만에 피해자 27명으로부터 10억8900여만원을 뜯어낸 사기단은 이런 수법으로 피해액의 80%가 넘는 8억9000여만원을 인출해 중국으로 송금하는 데 성공했다.

경찰은 대대적인 단속으로 대포통장 수급에 어려움을 겪게 된 사기범들이 단번에 최대한 많은 돈을 뜯어내려고 새로운 인출 방법을 고안해 낸 것으로 보고 있다.

현금자동인출기(ATM) 1일 출금한도가 600만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대포통장 한 개로 낼 수 있는 '매출'은 600만원으로 제한되기에 예전에는 수천만원을 뜯어도 대포통장 한 개당 600만원씩 나눠서 송금시켜야 했다.

하지만 창구에서 계좌 명의자가 직접 돈을 인출하게 하면 ATM 출금한도와 출금횟수 제한, 지연인출제도 등 보호장치가 모두 무력화되는 것이다.

이들의 범행이 꼬리를 잡힌 것은 과욕 때문이었다.

김 대리가 속한 조직은 지난달 13일 금융감독원을 사칭해 강동구에 사는 A씨(70·여)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의 계좌가 범죄에 이용됐으니 돈을 국가정보원 안전계좌에 보관해야 한다"고 속였다.

감쪽같이 속은 A씨는 4500만원을 송금했고, 이에 신이 난 사기범들은 아예 직접 A씨 집에 찾아가 2억8000만원을 더 뜯어냈다. 하지만 이들은 돈을 더 챙기려는 욕심에 A씨를 다시 용산으로 불러냈다가 잠복 중이던 경찰에게 붙잡혔다.

김 대리는 실상 중국에 거점을 둔 보이스피싱 사기단의 하부 조직원인 중국동포 한모씨(23)로 밝혀졌다. 지난해 입국한 한씨는 역시 중국동포인 정모씨(24), 서모씨(24)와 함께 송금책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한경닷컴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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