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바구스·안드레아스 마르크바르트 지음 / 배진아 옮김
청림출판 / 276쪽 / 1만4000원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인 필립 바구스와 안드레아스 마르크바르트는 《왜 그들만 부자가 되는가》에서 피케티의 이론을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잘라 말한다. 국가가 대부분 영역에서 거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대다수 산업국가에서 자본주의가 과연 존재하기나 하느냐고 반문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오늘날의 문제점에 대한 책임을 ‘사악한 자본주의와 부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국가와 정치인이 진정한 원인을 은폐하기 위해 즐겨 쓰는 수법이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화폐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국가가 독점하는 화폐시스템이다.
저자들은 오스트리아 국민경제학파의 수장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1881~1973)의 시장·화폐 이론을 중심으로 국가의 화폐독점권이 불러온 현실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비판한다.
미제스가 제기한 핵심적인 주장 중 하나는 국가와 중앙은행의 화폐독점권은 반드시 폐지돼야 하고, 국가는 화폐제도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화폐는 자유시장 경제질서의 본질인 개인의 자발적인 교환 체계 안에 존재하는 상품이다. 화폐가 국가에 의해 독점되고 지배된다면 고유한 시장 경제 질서라고 할 수 없다. 국가가 마음대로 찍어내는 화폐는 필연적으로 시장 경제의 작동을 파괴한다.
국가의 화폐독점권에서 비롯되는 통화량 팽창, 즉 인플레이션은 부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재분배를 일으킨다. 미제스가 설명하는 재분배 구조는 이렇다. 국가가 새로 만들어내는 돈을 가장 먼저 손에 넣는 사람들은 큰 이익을 본다. 국가와 그 추종자, 은행과 대기업 관계자들인 이들은 아직 오르지 않은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다. 반면 뒤늦게 그 돈을 만지거나 아예 손에 넣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피해를 본다. 봉급생활자와 연금 수급자인 이들이 돈을 확보할 수 있는 시점이 되면 물건과 서비스 가격은 이미 올라버린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벌어진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는 다양한 기법으로 돈을 새로 만들어내 위기에 몰린 대기업과 은행, 투자자들을 구제했다. 국가가 막대한 부채를 지며 새로 만든 돈을 제일 먼저 수혈받은 이들은 가장 큰 이익을 본다. 새 돈을 구경조차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만큼 피해를 보게 된다.
화폐독점권의 폐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낭비와 비효율을 낳는다.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로 더 막강해진 화폐독점권에 기인한 경제와 사회에 대한 국가의 광범위한 개입은 유익보다 해악만 유발했고, 잘못된 투자로 실질적인 부를 엄청난 규모로 파괴했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새롭게 만들어진 돈과 납세자에게 강제 징수한 돈으로 구축되고 유지되는 거대한 복지국가 건설을 대표적인 예로 든다. 이뿐만 아니다. 저축보다는 빚을 권하는 사회를 만들었고, 예전에 비해 훨씬 더 물질적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사람들이 부채에 점점 더 의존하면서 단기적인 계획밖에 세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이 궁극적으로 내놓는 해법은 간단하다. 이런 문제들을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인 국가의 화폐독점권을 철폐하는 것이다. 국가와 은행이 무(無)에서 만들어내는 ‘나쁜 화폐’ 시스템에서 ‘시장경제 화폐질서’가 자연스럽게 생성하는 실물에 기반을 둔 ‘좋은 화폐’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이다. ‘금본위제’ 도입이 대안이다. 이를 통해 국가의 개입과 규제, 간섭을 줄여 시장 경제 고유의 정의와 효율성이 보다 잘 드러나는 경제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시장 실패’에 따른 국가 개입의 필요성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책의 주장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국가의 화폐독점권을 당연하고 오래 전부터 주어진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겐 저자들이 그리는 세상을 비현실적인 유토피아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유주의와 자유시장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국가 개입의 부당성을 샅샅이 파헤치면서 오늘날의 문제점들을 큰 틀에서 고찰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하다. 세계 경제사에 한 획을 그었고, 지금도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는 오스트리아학파의 경제이론을 쉽고 명쾌하게 풀어내는 입문서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