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멈춰버린 성장엔진, 그것이 문제다
프랑스의 젊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을 출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다. “문제는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불가피하게 불평등을 산출한다”는 그의 기본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그의 정책 제안에 박수를 보냈다. 부와 소득에 높은 세금을 매기는 것이 자본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책이라는 그의 처방에 현혹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부자 감세’를 규탄하며 ‘부자 증세’를 외쳐온 한국의 좌파 경제학자들과 지식인, 운동꾼들 사이에 ‘피케티 신드롬’이 몰아쳤다. 그들은 피케티의 이론이 아니라 처방에만 귀를 기울였다. 현대자본주의는 세속자본주의이고, 열심히 일해 부(富)를 쌓을 것이 아니라 돈 많은 부모를 가진 배우자를 찾는 것이 인생을 열어가는 현명한 방법이라는 소설 구절을 인용한 피케티의 분석을 인문학적 소양이 넘치는 경제학적 분석이라고 환호했다.

그들은 피케티의 이론이 경제학의 이론으로서 옳은가 옳지 않은가에 대한 학문적인 관심은 접어두고 한국은 선진국보다 ‘피케티 지수’가 높아 부의 불평등이 더 심하기 때문에 고소득자에게 강화된 누진세를, 부자에게는 부유세를, 기업에는 더 높은 법인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피케티는 오는 5월 발표 예정인 ‘21세기 자본에 대하여’란 5쪽짜리 논문을 통해 ‘자본수익률(r)>경제성장률(g)이 설명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면서, ‘r이 g를 항상 앞선다는 자신의 공식이 지난 100년간의 소득 격차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고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섰다. 불평등과 관련된 자신의 핵심 입장을 포기한 것이다.

피케티와 관련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불평등, 가난, 경제성장과 같은 사회현상은 자연현상과 달리 간단한 법칙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현상이나 경제현상을 지배하는 일반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현상에 대한 단일한 설명이나 예측은 가능하지 않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맹목적 마르크스 추종자만이 역사나 경제의 단일법칙이 있다고 믿는다. 자본주의의 세 가지 법칙을 제시해 과거 자본주의 300년 역사를 단칼에 설명 예측하고, 대책을 제시하려 한 피케티도 이 점에서는 마르크스의 야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서구 사회와 달리 단기간에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에 피케티의 불완전한 이론을 적용할 수는 없다. 불과 50년 전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되지 않던 나라가 3만달러에 육박한 현상을 피케티의 자본주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봉건귀족이 존재한 적도 없고, 과거 양반사회에서 철저하게 단절된 채 근대 자본주의를 독특하게 발전시킨 한국에 대해 ‘세습자본주의’ 운운하는 것은 당치않은 얘기다.

피케티의 주장이 옳든 그르든 한국 사회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부터 인정해야 한다. 한국은 한국의 문제를 갖고 있고, 그것은 한국 현실에 맞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한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케티의 분석과 처방을 금과옥조로 받들 수는 없다. 그의 주장에 따라 ‘불평등’의 해소를 모든 정책의 맨 앞자리에 두는 것은 무책임하고 위험한 일이다.

한국 경제의 문제는 ‘불평등’이 아니라 ‘성장의 엔진’이 힘을 잃어가는 것이다. 잦은 선거로 ‘복지천국’을 건설하려는 정치인들의 터무니없는 야망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한국 경제는 피케티 신드롬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의 길을 찾아야 한다. 부의 재분배를 위해 소득과 자본에 중과세를 매길 게 아니라, 자본을 이용해 부를 창출하려는 기업가 정신이 기(氣)를 펼 수 있도록 사회분위기와 정책에 활기를 불어넣어야 할 때다.

신중섭 < 강원대 교수·철학 joongsop@kangwo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