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백치의 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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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 성장론에 임금인상 압박
기업을 자선단체로 여기는 인식 탓
이익 좇는 기업이 번창하는 환경을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
기업을 자선단체로 여기는 인식 탓
이익 좇는 기업이 번창하는 환경을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
![[다산칼럼] 백치의 편법](https://img.hankyung.com/photo/201503/AA.9718841.1.jpg)
지금 최저임금이 적정 수준인지는 논란거리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2000년 이래 연평균 7.9% 인상돼 물가상승률이나 생산성증가율보다 몇 배나 빠르게 오르는 추세다. 구매력 평가기준으로 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0위 수준이고 미국, 일본보다도 높다고 한다. 2013년 총 근로자의 11.4%인 208만여명이 최저임금보다 낮은 급여로 고용됐는데, 이는 그만큼 낮은 임금에도 일할 사람이 많아 ‘불법 고용’되는 처지임을 뜻한다. 향후 최저임금이 오를수록 더 많은 고용주들이 문을 닫거나 해고를 늘려 이 숫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가 제기되자 최 부총리는 어려운 중소기업이 인상된 임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대기업들에 ‘적정 납품가’ 보장을 촉구하겠다고 했다. 가다 보니 배가 산으로 하염없이 올라가는 꼴이다. 국가가 시장에서 결정되는 원청-하청기업 간의 납품가 결정에까지 관여하겠다는 것인가. 요즘엔 국회에서 안 만들어지는 법이 없으니, 아예 정부가 적정 납품가를 모두 결정하는 ‘납품가 결정법’을 제정하고 ‘납품가 산정위원회’도 만들지 왜 그럴까.
원래 최저임금은 저임금자의 최소생활 보장을 위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는 언론, 정치권 등에서 소비활성화와 경기부양을 위해 필요한 처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높아지는 최저임금은 전 산업의 임금 상승세를 밀어올려 더 많은 소비를 유발할 것이란 소위 ‘소득주도 성장논리’다.
소비가 소득에 제일 중요하다는 케인스이론을 신봉해 정부가 무작정 소비만 늘리려 한다면 못할 일이 없다. 국가가 돈을 무한정 풀어 모든 주택을 다 사들이고 모든 실업자를 공무원으로 고용해 대기업 수준의 월급을 주면 대한민국 소비 수준이 크게 늘어나고 단번에 명목국민소득도 크게 증가할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 기업은 어찌 될까.
임금은 기업의 비용이다. 따라서 임금이 오르면 기업이 고용을 줄이거나 사업을 접거나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해 국가의 총고용이 줄고 국민소득을 감소시키게 됨이 상식이다. 적정 임금 아래서의 기업의 고용증대가 소득증대→소비증대→경제성장을 이끄는 것이다. 지금 한국처럼 생산성은 주저앉고 기업 수익성은 추락하는 때, 일부러 임금을 올려 소비를 장려하고 경제성장을 이끌겠다는 ‘소득주도 성장’의 발상은 백치(白痴)의 편법(便法)이 아닐 수 없다. 마치 모든 기업이 망해 퇴직금을 많이 지급하면 목돈이 생겨 소비증대와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소리만큼 황당한 것이다.
한국에 이런 소동이 벌어지는 것은 어려울 때는 기업을 쥐어짜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있기 때문이다. 작년 박정수 교수의 ‘대국민 시장경제 인식도’ 조사에서는 국민의 59.5%가 ‘기업 목적은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라 응답했다. 국민이 기업을 이렇게 자선단체로 인식하는 나라에서 정치가에게 어떤 선택을 바라겠는가.
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기업은 인간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고 생업이 번창하는 인간사회를 만든다. 그러나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추구의 조직이다. 이윤이 없다면 창업하고 위험을 무릅쓴 채 투자하고 결사적으로 경쟁하는 일은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 기업의 이익은 투자자에게 배당으로, 직원에게 급료로, 정부에 세금으로 분배되고 기업의 장래 투자를 위해 보유된다. 이에 따라 기업이 무수히 번창하는 나라에서 소득과 일자리, 행복과 여유가 최고로 넘쳐나게 된다. 자유기업 시장경제로 먹고사는 나라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 원리를 터득해야 할 것이다.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