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내달 미국 방문 때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할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한 일본 총리는 한명도 없었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2006년 시도했지만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로 결국 무산됐다. 아베 총리의 미 의회 합동연설은 그런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미국·일본 간 신밀월관계가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아베 등장 뒤 더욱 가까워진 양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동참한 데 이어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도 공동보조를 맞추면서 더욱 긴밀해졌고 이것이 아베의 합동연설로까지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급부상하는 중국을 공동으로 견제한다는 점에서도 이해가 맞아떨어진다.

문제는 한국이다. 대일 관계는 전혀 개선될 조짐이 없고 고(高)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국내 배치와 AIIB 가입 여부를 둘러싸고 미·중 양국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러다간 한·중 FTA를 서두르다 TPP 조기참여에서 배제됐던 것과 같은 일이 또다시 반복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자칫 미·일·중 세 나라 사이에서 한국만 길을 잃고 붕 떠버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특히 과거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은 우리의 그것과는 사뭇 괴리가 있다는 점이 최근 종종 감지된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차관의 과거사 발언이 대표적이다. 한국이 일본 과거사에 지나치게 집착해 한·일 관계 개선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냉소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는 얘기다. 우리가 동의하든 않든, 이는 엄연한 현실이다. 만약 아베 총리의 미 의회 연설을 계기로 미국이 역사 인식에서 일본과 큰 틀에서 타협하기라도 한다면 한국 정부의 운신 폭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미·일 신밀월관계 시대를 맞아 우리 정부의 외교 전략에도 실용적 변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