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麵·noodle)의 역사는 빵보다 길다. 제조나 조리가 쉽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야생 밀이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에 전해지면서 아시아 전역으로 퍼졌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밀가루를 면(麵)이라 하고, 면으로 만든 것을 병(餠)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쌀로 만든 떡을 병(餠)이라 하고 국수를 면(麵)이라고 했는데, 삶은 면을 물로 헹군 것을 국수라고 불렀다. 밀이 귀했던 만큼 면은 특별한 날에나 먹었다. ‘잔치국수’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다.

제조법은 아시아 전체가 비슷하다. 반죽을 길게 늘여서 막대기에 감아 당기는 소면(素麵·중국의 선면, 한국과 일본의 소면), 작은 통 사이에 넣고 눌러 뽑는 압면(押麵·한국 냉면, 중국 하수면), 칼로 썰어 만드는 절면(切麵·한국 칼국수, 일본 우동), 짜장면처럼 양쪽으로 길게 늘이는 납면(拉麵·중국 납면, 일본 라멘), 쌀을 이용한 하분(河粉·동남아 쌀국수) 등으로 구분된다.

이 중 중국의 납면(拉麵·중국 발음 라미엔)은 일본의 라멘으로, 다시 한국의 라면으로 변신했다. 인스턴트 라면은 중일전쟁 때 중국인들이 건면(乾麵)을 기름에 튀겨 보관하기 쉽게 포장하고 스프를 가미해 먹은 게 시초라고 한다. 이를 현대식 라면으로 바꾼 것은 일본 닛신식품의 치킨라멘(1958년)이다. 한국에는 1963년 들어왔고 정부의 혼분식 장려에 힘입어 국민적 대용식이 됐다.

한국인의 라면 사랑은 유별나다.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아서 그럴까. 엊그제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한국인의 면(유럽 주식인 파스타는 제외) 소비량은 1인당 9.7㎏으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일본(9.4㎏), 인도네시아(5.8㎏), 중국(5.0㎏), 베트남(4.7㎏), 홍콩(4.1㎏) 등 상위 10개 나라가 모두 아시아 국가다. 아시아 면 소비량은 세계의 85%, 작년 매출은 418억달러(약 47조원)에 이른다.

이에 따라 글로벌 투자자들이 라면 업체들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 10대 업체인 인도네시아 인도푸드 수크세스, 일본 도요스이산, 한국 농심을 관심 대상으로 꼽는다고 한다. 가장 늦게 라면을 만들기 시작했으면서도 가장 빨리 성장해 세계 강국으로 부상한 한국. 지난해 라면 수출액은 2억846만달러(약 2251억원), 수출국은 120개를 넘어섰다.

한때는 구로공단 여공들의 ‘라보때(‘라면 보통’으로 때움)’ 정신으로 가난을 극복했다. 이제 그 쫄깃하고 차진 면발의 힘으로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주름잡게 됐으니 격세지감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