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통상임금 우선 보상" 조건 제시…현대차 임금체계 개편 '암초'
현대자동차 노조가 노사 공동으로 진행 중인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 “통상임금을 확대해 과거 미지급분을 지급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 1월 1심 법원이 현대차의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판단(노조 패소)을 내렸는데도 노조가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 노사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발족시킨 ‘임금체계 및 통상임금 개선위원회’의 활동 시한은 이달 말까지다. 그러나 노조가 근로자 한 명당 평균 1억원을 넘는 과거 통상임금 소급분 문제를 제기하면서 제대로 된 임금체계 개편을 이끌어내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통상임금, 정년 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 임금과 근무형태 관련 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조합원 수 4만8000여명으로 국내 최대 사업장인 현대차의 임금체계 개편은 초미의 관심사다.

○“통상임금 보상이 먼저”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23일 “노조가 임금체계 개편에 합의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회사가 통상임금 확대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20일 자문위원단이 임금체계 개편 의견서를 내놨고 회사도 개편안을 내놓을 예정이지만 노조는 개편안을 낼 계획이 없다”며 “통상임금과 관련해 회사 측이 납득할 만한 제안을 먼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는 지난 1월 통상임금 확대 소송 1심에서 패소한 이후 이런 방침을 정하고 회사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가 제기하고 있는 통상임금 문제는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과거 미지급 임금 부분이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해 임금협상에서 과거 부분은 2013년 3월 제기한 대표소송(통상임금 확대) 결과를 따르고 미래 임금체계는 임금체계 및 통상임금 개선위원회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1심에선 노조 측이 패소했다. 법원은 ‘두 달에 한 번 지급하는 상여금은 15일 미만 근무자에게는 지급하지 않는다’는 현대차의 상여금 지급 시행세칙에 따라 현대차의 상여금이 통상임금 요건 중 하나인 고정성이 없다고 봤다.

1심 법원의 판단은 2013년 12월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내놓은 통상임금 가이드라인에 부합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는 항소하는 것은 물론 기존 합의를 뒤집고 임금체계 개편의 전제조건으로 통상임금 보상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노조 "통상임금 우선 보상" 조건 제시…현대차 임금체계 개편 '암초'
○노조 내 주도권 다툼도 격화

현대차 노조가 1심 판결 패소 이후 태도를 바꿔 소급분 문제 해결을 임금체계 개편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것은 우선 노조원들이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임금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통상임금은 야간 연장근로·주말 특근 등에 대해 지급하는 수당을 결정하는 기준임금이다. 현대차는 야근·특근 시 통상임금의 최대 3.5배까지 준다. 특히 상여금이 기본급의 1000%에 달하는 현대차는 상여금이 포함되면 통상임금이 대폭 늘어난다.

소송 제기 시점인 2013년 2월부터 임금채권 소멸시효 기간인 3년을 소급하면 1인당 평균 6600여만원, 회사 전체로는 3조1677억여원의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 대법원까지 간다면 최종 판결 시까지 4~5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할 때 1인당 1억원을 넘을 전망이다.

현대차 노조가 기존 합의를 뒤집으면서까지 통상임금 소급분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이경훈 노조위원장과 집행부를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10여개 현장조직(계파)과의 파워게임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다는 게 노동계의 분석이다.

특히 올해 가을에는 2년에 한 번 돌아오는 위원장 선거가 있기 때문에 각 계파는 벌써 선거운동본부를 차리는 등 세(勢) 규합에 나서고 있다. 이런 시기에 집행부가 노조원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챙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차기 위원장 선거는 물론 올해 임금·단체협상도 다른 계파들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

직전 집행부를 연합해서 구성했던 민주현장·금속연대 계파는 2012년 통상임금 대표소송을 사측과 합의한 장본인이면서도 지난해 임금협상에서 현 집행부가 통상임금 확대에 전력(全力)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등 이경훈 위원장 흔들기를 지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현 집행부와 회사 측이 사내하도급 직원 4000명을 정규직으로 특별 채용하기로 한 합의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 노사는 이달 말까지 7~8차례 집중 회의를 열 예정이지만 노조가 통상임금 소급분 요구를 철회하지 않으면 접점을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