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자와 패자 > 미국 LPGA투어 파운더스컵 최종라운드에 나선 김효주가 23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와일드파이어GC 18번홀(파4)에서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우승을 확정짓자 스테이시 루이스(오른쪽)가 고개를 떨구고 있다. AFP연합뉴스
< 승자와 패자 > 미국 LPGA투어 파운더스컵 최종라운드에 나선 김효주가 23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와일드파이어GC 18번홀(파4)에서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우승을 확정짓자 스테이시 루이스(오른쪽)가 고개를 떨구고 있다. AFP연합뉴스
“정말 견고한 선수다.”

세계랭킹 3위 스테이시 루이스(미국)는 경기 후 동료인 킴 코프먼(미국)에게 김효주(20·롯데)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이렇게 털어놨다. 루이스는 “전반에 상대를 압박하지 못했고 후반에 몇 개의 (버디) 퍼트를 해냈지만 김효주가 바로 (버디로) 응수했다”며 “그는 엄청난 중압감 속에서 완벽한 플레이를 펼쳤다”고 패배를 시인했다.

김효주가 23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와일드파이어GC(파72·6601야드)에서 열린 LPGA투어 파운더스컵(총상금 150만달러) 마지막날 버디 7개와 보기 2개로 5언더파 67타를 쳐 최종합계 21언더파 267타로 루이스를 3타 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미국의 자존심’ 루이스와 챔피언조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둬 새로운 ‘골프 여제’의 등장을 만천하에 알렸다.

◆송곳 아이언샷과 강한 멘탈

루이스 버디 압박에 버디 '맞불'…김효주 '승부사 본색'
이날 김효주의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송곳 같은 아이언샷과 흔들림 없는 강한 멘탈, 위기관리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김효주의 아이언샷은 고비마다 홀 1m 지점에 떨어질 정도로 정확했다. 10번홀(파4) 보기로 인해 1타 차로 추격당한 김효주는 11~13번홀에서 3연속 버디를 낚을 때 11, 13번홀에서 1m 버디를 잡아냈다. 12번홀(파4)에서는 10m짜리 긴 훅라인 버디 퍼트를 성공시켜 루이스를 질리게 만들었다. 김효주의 나흘 평균 그린 적중률은 79.1%로 완벽에 가까웠다.

경험 많은 루이스는 김효주가 흔들리지 않자 오히려 쩔쩔매는 모습이었다. 15번홀(파5)에서는 두 번째 샷이 왼쪽으로 훅이 나자 클럽을 내팽개치며 불만을 터뜨렸다. 반면 김효주는 이 홀에서 206야드를 남기고 5번 우드로 ‘2온’에 성공했다. 그린에 오른 공이 깃대를 스쳐 앨버트로스가 될 뻔했다.

루이스가 16번홀(파4)에서 1m 버디를 잡아 1타 차로 끝까지 물고 늘어졌으나 김효주는 17번홀(파3)에서 침착하게 파를 기록한 뒤 18번홀(파4)을 2m 버디로 마무리했다. 연장 승부를 기대했던 루이스는 마지막 홀에서 8m 버디 퍼트를 실패한 뒤 불쾌한 심기를 드러내다 파 퍼트마저 미스하며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김효주는 지난달 말 태국에서 열린 혼다타일랜드 첫날 루이스와의 맞대결에서 당한 완패를 깨끗이 설욕했다. 당시 공식 데뷔전이었던 김효주는 긴장한 탓에 이븐파에 그쳤으나 루이스는 6언더파를 기록했다.

◆신인상·올해의 선수상 동시 석권 노려

김효주는 ‘루키’지만 이미 지난해 메이저대회 에비앙챔피언십에서 백전 노장인 캐리 웹(호주)을 꺾고 우승해 신인왕과 동시에 올해의 선수상, 상금왕 후보로 거론된다. 김효주는 지금까지 LPGA투어 13개 대회에 출전해 2승을 포함, 한 번도 ‘톱25’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다.

신인왕 포인트에서는 퓨어실크바하마클래식 챔피언 김세영(23·미래에셋)이 315점을 획득해 선두로 나선 가운데 에리야 쭈타누깐(태국)이 2위(283점), 김효주가 3위(233점), 장하나(24·비씨카드)가 4위(198점)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 상금 22만5000달러(약 2억5000만원)를 보탠 김효주는 상금랭킹 7위에 오르며 1위 리디아 고(뉴질랜드)와 본격적인 경쟁을 예고했다. 세계랭킹도 4위로 도약했다.

김효주는 ‘제2의 낸시 로페즈’를 노린다. 로페즈는 LPGA투어에서 데뷔 첫해(1978년)에 신인상과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쥔 유일한 선수다. 아울러 미국과 한국 양대 투어의 동시 상금왕 등극도 겨냥하고 있다. 김효주는 지난해 말 열린 KLPGA투어 2015시즌 개막전에서 우승해 양대 투어에서 1승씩을 거둔 상태다.

◆한국(계) 선수, 투어 10연속 우승 합작

이번 대회에서 김효주가 우승하면서 올해 열린 LPGA투어 6개 대회 중 5개 대회를 한국 선수들이 차지했다. 동포 선수인 리디아 고의 우승까지 합치면 한국(계) 선수들의 전승 행진이다. 지난해 말 열린 4개 대회까지 합칠 경우 10개 대회 연속 한국계의 우승 합작이 이어지고 있다.

이일희(27·볼빅)와 이미향(22·볼빅)이 나란히 합계 16언더파로 공동 3위에 올랐고 최나연(28·SK텔레콤)과 김세영, 리디아 고 등은 합계 15언더파 공동 6위로 대회를 마쳤다. 리디아 고는 24라운드 연속 언더파 기록을 세웠다.

일문일답
“루이스에 기분 안나빠…마지막 홀 챔피언 퍼트, 내 차례 되면 치려고 해”


김효주(20·롯데)는 스테이시 루이스(미국)와의 맞대결에 대해 “이전에도 쳐본 적이 있고 톱랭커이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우려고 했다”며 “서로 버디가 많이 나와 재미있는 경기였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효주와의 일문일답.

▷세 번째 출전 만에 우승인데, 예감했나.

“전혀 못했다. 이번 대회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기분 좋게 치고 가자고 생각했다. 대회 코스도 좋았고 기분도 좋았다.”

▷18번홀에서 루이스가 챔피언 퍼트를 양보하지 않았는데.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두 번째 샷이 그린에 잘 올라갔고 내 차례가 되면 순서대로 치려고 했다.”

▷축하해주는 친구들이 많이 안 보인다.

“(두 명이 한 조로 경기하는 바람에) 경기가 너무 늦게 끝났다. 다음 대회가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리기 때문에 이번 대회가 열린 애리조나주에서 멀리 이동해야 한다. 그래서 항공편 때문에 일찍 간 사람이 많았다.”

▷다음 일정은.

“일단 로스앤젤레스로 가서 쉴 예정이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리는 KIA클래식에 출전한다. 한국 대회는 롯데마트여자오픈(4월9~12일)에 출전할 것이다.”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시차가 있는데도 많은 분이 TV로 제 경기를 지켜봤다는 걸 알고 놀랐다. 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