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해줄 테니…" 대놓고 돈 뜯는 '파워블로甲'
대형 외식업체인 A사 홍보팀은 지난달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파워블로거’라고 소개한 한 남성이 “1000만원 정도를 주면 1년간 정기적으로 홍보성 글을 올려주겠다”며 ‘검은 거래’를 제안해 온 것. 홍보팀이 거절하자 이 남성은 “두고 보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얼마 뒤부터 A사에 대한 악의적인 글이 한 블로그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A사 관계자는 “홍보성 글을 써줄 테니 돈을 달라는 전화가 한 달에 한 통 정도 걸려온다”며 “거절하면 교묘하게 회사의 신뢰와 이미지를 훼손하는 글이 등장해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온라인 영향력을 앞세워 협박성 요구를 일삼는 일부 파워블로거가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 같은 파워블로거를 ‘파워블로갑(甲)’이라고 부른다.

○‘거절→악성글→고객 감소’ 피해도

서울 강남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김모 대표(30)는 파워블로거의 제안을 거절했다가 실제로 고객 수가 급감하는 피해를 입었다. ‘100만원을 주면 좋은 내용만 써 주겠다’던 한 여성 블로거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음식이 짜고 맛이 없다’는 내용으로 비방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고객 수가 절반이나 줄어들었고, 그 상태가 한 달 정도 지속됐다”며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말했다.

포털업계에선 지속적으로 하루 1000~5000명이 방문하고, 1000명 안팎이 ‘블로그 이웃’으로 등록해 놓은 파워블로그 수를 1000개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같은 블로그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는 온라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 이를 활용하려는 기업들의 수요가 적지 않다. 그렇다 보니 일부 파워블로거는 이를 역으로 이용해 각종 ‘갑질’을 하는 파워블로갑으로 뒤바뀐다.

이 같은 파워블로갑은 기업을 대상으론 6개월~1년 단위로 글을 써주겠다며 대가를 요구한다. 수천만원을 달라고 하는 파워블로거도 있다는 게 홍보업계의 얘기다. 레스토랑과 같은 소규모 점주에겐 1~2회가량의 홍보글 게시를 조건으로 50만~100만원 정도와 식사권·이용권 등을 요구하기도 한다.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여지없이 ‘보복’하는 것도 파워블로갑의 특성이다.

○포털·공정위 나섰지만 …

네이버 등 포털과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 파워블로갑을 제재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네이버는 방문자 수와 전문성 등을 따져 선정하던 네이버 지정 파워블로거의 기준을 2010년부터 대폭 강화해 한때 1092명이던 파워블로거 수를 2014년엔 153명까지 줄였다. 네이버 관계자는 “악성 블로거에 대한 신고가 접수되면 파워블로거 지위를 박탈하거나 계정을 정지하는 등 나름의 제재를 취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파워블로거라고 칭하면서 악질적 행위를 일삼는 블로거가 워낙 많아 이를 모두 단속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공정위도 2011년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지침’을 개정해 블로거들이 업체로부터 광고비를 받은 뒤 이를 고지하지 않고 홍보글을 올리는 행위를 집중 감시해왔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는 블로거들에게 경제적 대가를 지급하고 상품 등의 소개·추천글을 게재하도록 해 놓고도 이를 고지하지 않은 국내외 24개 업체를 시정 조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가로 받은 돈이 적다는 이유로 블로거에 대한 제재는 이뤄지지 않았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시장 질서에 혼란을 주는 파워블로갑에 대한 명확한 신고체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