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AIIB, 중국의 리더십에 대한 질문들
ADB가 바빠졌다고 한다. 거들먹거리고 관료주의적이던 사무처 요원들이 부랴부랴 친절한 ADB씨로 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시 AIIB라는 경쟁자가 나타났기 때문일 것이다. 공적 기관이나 정부조차 경쟁이 있으면 이렇게 달라지는 모양이다. 중국이 인도 아세안 등 21개국과 AIIB 설립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은 작년 10월이다. 최근에는 영국 독일이 전격적으로 AIIB 참여를 발표했고 일본과 한국도 곧 가입을 공식화한다. OECD와 IMF, 세계은행도 지지를 표명한 상태다. 어제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도 협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의 AIIB 설립은 다소 황당한 구상이다. 중국은 여전히 개도국이다. ADB의 원조와 지원을 받는 소위 수원국(受援國) 처지다. ADB 기금 1650억달러 가운데 중국이 빌려간 대출금은 210억7900만달러로 ADB 대출잔액 비중이 24.74%다. 이 덩치 큰 수원국이 갑자기 대규모 원조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빌려간 돈이나 먼저 갚으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자연스럽다. 중국의 AIIB 구상은 당연히 아시아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야심 때문이다. 일본에 대한 질투심이기도 할 것이다.

과연 중국은 AIIB를 통해 아시아 지역리더십을 인정받을 것인가. 미국의 반대를 극복하고 중국의 의지가 관철되고 있는 데서는 분명 G2를 지향하는 중국의 힘이 느껴진다. 그러나 경제력이 리더십의 전부는 아니다. 더구나 중국은 아직 사회발전 단계가 낮다. 지도자들의 잇단 부패상부터 그렇다. 비위 리스트에는 애인과 축첩조차 필수다. CCTV의 미녀 아나운서는 곧 지도자의 애인이라는 공식이라면 이는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부패 규모는 나왔다 하면 수조원대다. 시진핑의 가족들조차 치부설에 휘말려 있을 정도다. 최근 수년간 99명의 장차관급 고위 인물이 숙청되었다면 부패의 규모조차 중국적이다.

더욱 큰 문제는 가치 지향이 없다는 점이다. 당이 곧 국가인 나라에서 민주적 가치, 공화적 덕목은 설 자리가 없다. 당 서열대로 앞으로 나란히 인민대회당에 입장하는 계급질서의 국가에서 가치질서는 불가능하다. ‘헌법적 가치’ 이런 것들이 없다. 국제적 헌신이라는 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지 말라거나 대만을 인정하지 말라는 금지 리스트를 난폭하게 내밀고 있다. 국제적 개입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것이 항미원조라 부르는 6·25전쟁 참전이었을 테다. 그런데 물에 빠진 북한을 건져놓고 보니 이것조차 최악의 결과로 치닫고 말았다. 핵 협박을 국가 생존수단으로 삼는 광기의 독재국가를 되살린 것이라면 중국의 헌신은 아예 기록할 것이 없다.

티베트를 강점하고 베트남을 침공하며… 신장위구르에서는 오늘도 승려들이 분신자살하는 그런 국가다. 수억명 농민공의 고통은 중국의 정치체제를 바꾸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 그런 점들 때문에 우리는 아시아를 돕겠다는 중국의 AIIB 계획을 들으며 내심 여러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달러가치를 지탱했던 금 덩어리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적 가치목록을 세계인들이 수용해왔던 것이 20세기의 역사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파한 공로는 비교할 만한 사례가 없다. 2차 대전에서는 30만명의 죽음으로 히틀러와 일본의 국가주의를 패퇴시켰고, 다시 3만6000명의 젊음을 바쳐 자유롭고 번영된 대한민국을 방어했던 것이다. 한반도에서 미국과 중국이 했던 일만큼 극명하게 대비되는 일도 없다. 중국은 최근의 북한 핵 문제에서조차 기여한 것이 없다.

우리가 AIIB 창설안을 들으면서 갖게 되는 의문은 이런 것들이다. 중국은 이런 질문들에 답변해야 한다. 이죽거리는 질투심으로 리더십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0년간 중국이 아시아 리더십을 유지해왔던 것은 문치의 정신과 유교였다. 그러나 지금은 근육의 힘만 자랑삼고 있다. 중국은 패권에의 유혹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점이 보장되어야 AIIB도 굴러간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