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길을 개척한 사람들] 여성 속옷 판매 마다않던 금융 벤처맨, 자금 2조원 굴리는 토종 PEF 대표주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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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으로 대형 PEF 일군 송인준 IMM 프라이빗에쿼티 대표
"잘 되면 직원 덕, 못 되면 사장 탓"…"과감하게 투자하라" 리더십 발휘
"투자금은 반드시 돌려준다"…'무한책임'으로 신뢰 구축
국내 PEF 도입 10년 만에 해외로 한국형 PEF 역수출
"잘 되면 직원 덕, 못 되면 사장 탓"…"과감하게 투자하라" 리더십 발휘
"투자금은 반드시 돌려준다"…'무한책임'으로 신뢰 구축
국내 PEF 도입 10년 만에 해외로 한국형 PEF 역수출
송인준 IMM 프라이빗에쿼티 대표(50)는 2002년 술집에 갈 때 여성 속옷인 란제리가 들어있는 상자를 꼭 들고 다녔다. 술집 ‘마담’들에게 란제리를 팔기 위해서였다. 명색이 투자회사(IMM파트너스) 사장이지만 속옷 장사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종합의류업체 삼도물산 인수 계획이 어긋난 게 화근이었다. 삼도물산을 인수, 이미 사들인 란제리 회사 라보라와 합쳐 시너지를 낸다는 구상이 물 건너가면서 라보라의 영업을 살리는 게 급선무가 됐다.
란제리 떨이 판매, 공장 매각 등으로 위기를 넘긴 그는 지금 2조원을 굴리는 대형 사모펀드(PEF) 대표다. 지난 15년간 위기가 끊이지 않았지만 ‘정성은 통한다’는 우직한 원칙을 붙잡고 토종 PEF 대표 주자로 성장했다.
해외파 속에서 일낸 토종 M&A맨
PEF 운용사는 연기금이나 보험사 등 투자자(LP)로부터 자금을 받아 펀드를 만든 뒤 기업 등에 투자한다. IMM은 높은 투자수익률로 명성을 날린다. 금융위기 당시 투자했던 자금을 최근 4년에 걸쳐 회수한 결과 연평균 수익률(IRR)은 28.2%에 이른다. 예금 금리가 연 2% 안팎으로 떨어진 요즘 상상하기 어려운 수익률일 뿐 아니라 다른 PEF 운용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국민연금 우정사업본부 등 국내 큰손들이 앞다퉈 송 대표에게 돈을 맡기는 이유다.
그는 인맥과 경력이 화려한 PEF업계에서 다소 ‘소박한 이력’을 가졌다. 서울대 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회계사로 아서앤더슨회계법인, 한국종합금융 등에서 일하며 인수합병(M&A) 경험을 쌓은 게 전부다. 해외 유수의 MBA를 나와 세계적 투자은행(IB)이나 운용사에서 풍부한 투자·자문 경험을 갖춘 글로벌 PEF 스타 매니저들에 비하면 경력이나 네트워크가 부족하다. 하지만 송 대표는 이들과 경쟁하며 IMM을 국내 ‘빅3’ PEF 운용사로 키워냈다.
무한책임의 원칙
송 대표가 맨손으로 대형 PEF를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신뢰’였다. 그는 돈을 맡긴 출자자들에게 반드시 수익을 돌려준다는 원칙을 지켰다. 2001년 IMM이 투자한 비상장사(프리즘)와 두산그룹 계열 의류 상장사(아이케이엔터프라이즈) 간 합병이 무산됐을 때다. 애초 상장사 주식을 받기로 했던 투자자들에게 비상장 주식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매각이 힘든 데다 주식 가치를 따지기도 어려운 비상장사 주식을 받게 된다는 소식에 투자자들은 “금융사고”라며 항의했다. 그렇다고 자본금 40억원짜리 IMM이 투자자 출자금 180억원을 물어줄 능력도 없었다. 회사가 문을 닫을 위기였다. 그는 돈을 빌려서 고가에 주식을 되사줬다. 출자자 사이에 ‘IMM은 반드시 약속을 지킨다’는 믿음이 생긴 것은 이때부터다.
송 대표가 PEF 시장에 본격 뛰어든 것은 2006년이다. 당시 국내 PEF 시장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해외 PEF 제도를 국내로 이식해 정책적인 육성에 나서던 시기였다. 그는 “골드만삭스 뉴브리지캐피털 등 외국 자본이 PEF를 통해 국내에서 막대한 돈을 버는 것을 보면서 울화가 치밀었다”고 회고했다. “그들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는데 여건도 안 되고 믿어주질 않아 답답했다”는 것. 송 대표가 PEF 시장에서 ‘결판을 보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이때였다. 국내 PEF 시장이 성장하면서 활동영역이 넓어졌다. 2005년 말 2조9000억원에 불과하던 국내 PEF 시장은 9년 만인 지난해 말 50조원 규모로 약 17배 성장했다.
“한국형 사모펀드 수출하겠다”
송 대표는 서른다섯 살이던 2000년 투자자문사 타임앤컴퍼니를 창업했다. 직원은 그를 포함해 세 명이었다. 이듬해 부실 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인 IMM파트너스를 차렸다. 사업 초기에는 하루하루가 위기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주눅 들지 않았다. 남들이 꺼리거나 가지 않는 길에서 가치를 발견한 후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하는 두둑한 배짱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IMM은 2012년 한독과 근화제약에 잇달아 투자했다. 당시 제약업계는 고질적인 리베이트 영업 관행 등으로 PEF들이 투자를 꺼리던 분야였다. 그러나 송 대표는 영업만 제대로 하면 투자 기회가 있다고 봤다. 지난해 해운업(현대상선 LNG사업부)에 5000억원을 투자한 것도 해운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판단에서다.
새로운 분야에 과감히 뛰어들 수 있는 배경엔 송 대표의 리더십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투자가 잘되면 직원 덕, 잘못되면 사장 탓”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잘못된 투자 책임을 묻기 시작하면 과감한 투자를 꺼린다는 지론에서다. 대신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CEO가 직접 나서서 전사적 역량을 집중한다. 2013년 자동차 와이퍼 제조업체 캐프에서 창업주 간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을 때 송 대표는 최고투자책임자(CIO) 등 다섯 명의 핵심 인력을 대구 본사에 1년간 파견했다. IMM의 투자금은 350억원으로 보유 펀드 중 비중이 3% 수준에 불과했지만 전체 운용 인력(18명)의 30%에 달하는 인원을 투입해 위기를 돌파했다.
송 대표는 한국형 사모펀드를 수출할 구상도 하고 있다. IMM이 올해 연말까지 조성할 3호 펀드의 목표액은 1조2000억원. “최소 2000억원은 해외 투자자로부터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미 2호 펀드에 싱가포르 테마섹 계열 파빌리온(1800만달러)과 영국계 콜러캐피털(500만달러) 등의 투자를 받았다.
송인준 대표는
△1965년 대전 출생 △1990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92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졸업 △1991~1995년 아서앤더슨회계법인 △1995~1997년 한국종합금융 기업금융팀△1997~1999년 CKD창업투자 △2000~2006년 IMM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 대표 △2006년~ IMM 프라이빗에쿼티(PE) 대표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란제리 떨이 판매, 공장 매각 등으로 위기를 넘긴 그는 지금 2조원을 굴리는 대형 사모펀드(PEF) 대표다. 지난 15년간 위기가 끊이지 않았지만 ‘정성은 통한다’는 우직한 원칙을 붙잡고 토종 PEF 대표 주자로 성장했다.
해외파 속에서 일낸 토종 M&A맨
PEF 운용사는 연기금이나 보험사 등 투자자(LP)로부터 자금을 받아 펀드를 만든 뒤 기업 등에 투자한다. IMM은 높은 투자수익률로 명성을 날린다. 금융위기 당시 투자했던 자금을 최근 4년에 걸쳐 회수한 결과 연평균 수익률(IRR)은 28.2%에 이른다. 예금 금리가 연 2% 안팎으로 떨어진 요즘 상상하기 어려운 수익률일 뿐 아니라 다른 PEF 운용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국민연금 우정사업본부 등 국내 큰손들이 앞다퉈 송 대표에게 돈을 맡기는 이유다.
그는 인맥과 경력이 화려한 PEF업계에서 다소 ‘소박한 이력’을 가졌다. 서울대 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회계사로 아서앤더슨회계법인, 한국종합금융 등에서 일하며 인수합병(M&A) 경험을 쌓은 게 전부다. 해외 유수의 MBA를 나와 세계적 투자은행(IB)이나 운용사에서 풍부한 투자·자문 경험을 갖춘 글로벌 PEF 스타 매니저들에 비하면 경력이나 네트워크가 부족하다. 하지만 송 대표는 이들과 경쟁하며 IMM을 국내 ‘빅3’ PEF 운용사로 키워냈다.
무한책임의 원칙
송 대표가 맨손으로 대형 PEF를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신뢰’였다. 그는 돈을 맡긴 출자자들에게 반드시 수익을 돌려준다는 원칙을 지켰다. 2001년 IMM이 투자한 비상장사(프리즘)와 두산그룹 계열 의류 상장사(아이케이엔터프라이즈) 간 합병이 무산됐을 때다. 애초 상장사 주식을 받기로 했던 투자자들에게 비상장 주식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매각이 힘든 데다 주식 가치를 따지기도 어려운 비상장사 주식을 받게 된다는 소식에 투자자들은 “금융사고”라며 항의했다. 그렇다고 자본금 40억원짜리 IMM이 투자자 출자금 180억원을 물어줄 능력도 없었다. 회사가 문을 닫을 위기였다. 그는 돈을 빌려서 고가에 주식을 되사줬다. 출자자 사이에 ‘IMM은 반드시 약속을 지킨다’는 믿음이 생긴 것은 이때부터다.
송 대표가 PEF 시장에 본격 뛰어든 것은 2006년이다. 당시 국내 PEF 시장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해외 PEF 제도를 국내로 이식해 정책적인 육성에 나서던 시기였다. 그는 “골드만삭스 뉴브리지캐피털 등 외국 자본이 PEF를 통해 국내에서 막대한 돈을 버는 것을 보면서 울화가 치밀었다”고 회고했다. “그들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는데 여건도 안 되고 믿어주질 않아 답답했다”는 것. 송 대표가 PEF 시장에서 ‘결판을 보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이때였다. 국내 PEF 시장이 성장하면서 활동영역이 넓어졌다. 2005년 말 2조9000억원에 불과하던 국내 PEF 시장은 9년 만인 지난해 말 50조원 규모로 약 17배 성장했다.
“한국형 사모펀드 수출하겠다”
송 대표는 서른다섯 살이던 2000년 투자자문사 타임앤컴퍼니를 창업했다. 직원은 그를 포함해 세 명이었다. 이듬해 부실 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인 IMM파트너스를 차렸다. 사업 초기에는 하루하루가 위기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주눅 들지 않았다. 남들이 꺼리거나 가지 않는 길에서 가치를 발견한 후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하는 두둑한 배짱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IMM은 2012년 한독과 근화제약에 잇달아 투자했다. 당시 제약업계는 고질적인 리베이트 영업 관행 등으로 PEF들이 투자를 꺼리던 분야였다. 그러나 송 대표는 영업만 제대로 하면 투자 기회가 있다고 봤다. 지난해 해운업(현대상선 LNG사업부)에 5000억원을 투자한 것도 해운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판단에서다.
새로운 분야에 과감히 뛰어들 수 있는 배경엔 송 대표의 리더십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투자가 잘되면 직원 덕, 잘못되면 사장 탓”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잘못된 투자 책임을 묻기 시작하면 과감한 투자를 꺼린다는 지론에서다. 대신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CEO가 직접 나서서 전사적 역량을 집중한다. 2013년 자동차 와이퍼 제조업체 캐프에서 창업주 간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을 때 송 대표는 최고투자책임자(CIO) 등 다섯 명의 핵심 인력을 대구 본사에 1년간 파견했다. IMM의 투자금은 350억원으로 보유 펀드 중 비중이 3% 수준에 불과했지만 전체 운용 인력(18명)의 30%에 달하는 인원을 투입해 위기를 돌파했다.
송 대표는 한국형 사모펀드를 수출할 구상도 하고 있다. IMM이 올해 연말까지 조성할 3호 펀드의 목표액은 1조2000억원. “최소 2000억원은 해외 투자자로부터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미 2호 펀드에 싱가포르 테마섹 계열 파빌리온(1800만달러)과 영국계 콜러캐피털(500만달러) 등의 투자를 받았다.
송인준 대표는
△1965년 대전 출생 △1990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92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졸업 △1991~1995년 아서앤더슨회계법인 △1995~1997년 한국종합금융 기업금융팀△1997~1999년 CKD창업투자 △2000~2006년 IMM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 대표 △2006년~ IMM 프라이빗에쿼티(PE) 대표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