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자체 브랜드가 없다. 브랜드가 기업의 가치를 대변하기도 하는 이런 때에 회사를 대표하는 브랜드 없이 25년 동안 화장품, 제약, 건강식품 분야에서 연구개발(R&D)과 제조에 몰두하고 있다. 그리고 매년 매출이 평균 15%가량 늘어나는 등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업계 최초로 ODM(제조자개발생산)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ODM 비즈니스 모델이라 생각한다. ODM과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은 생산한 제품에 제조사의 상표가 아닌 주문자의 상표가 부착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두 비즈니스 모델의 가장 큰 차이는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지 여부다. ODM은 독자적 기술력으로 제품을 직접 기획하고 개발할 수 있다. 단순 제품생산이 아닌 품질관리를 거쳐 거래처에 납품하기까지 전 과정에 대한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ODM이다.

나는 브랜드에 대한 투자 대신 직원의 30% 이상을 연구원으로 구성하고, 연 매출의 5% 이상을 R&D에 투자해 왔다. 아울러 고객사의 정보를 엄격히 지키는 ‘고객 보호의 원칙’, 하나의 처방을 오직 한 기업에만 제공하는 ‘1사 1처방의 원칙’ 등을 고수해 왔다. 고객과의 신뢰를 소중한 가치로 여겨 온 것이 지금의 회사를 만든 또 하나의 원동력이 됐다.

주변에서 자주 이런 질문을 한다. ‘한국콜마의 기술력과 인지도 정도라면 이제 브랜드 하나쯤 만들어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사실 우리가 만들어낸 제품들이 모두 유명 브랜드를 달고 고가에 팔리는 걸 감안한다면 회사 자체 브랜드를 만들 경우 더 높은 매출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브랜드를 만들 계획이 없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거래처와의 상생(相生), 신뢰를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ODM은 브랜드 파워가 아닌 기술력으로 승부하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다. 우수한 기술력이 경쟁력으로 작용하기에 유수의 글로벌 기업과도 동등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앞으로 우수한 기술력과 고객 중심 경영, 거래처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ODM 기업이 더 많이 생겨난다면 대한민국 제조업 부활과 더불어 진정한 상생의 기업문화가 뿌리내릴 것이라 기대해 본다.

윤동한 < 한국콜마 회장 yoon@kolmar.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