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한국을 매우 잘 아는 분이었다. 나라의 사이즈만 다를 뿐 한국과 싱가포르의 발전 과정이 닮았다는 자체를 그렇게 좋아했다고 한다. 그의 말마따나 무에서 유를 창조한 두 나라가 아닌가. 그러나 한국에 대한 그의 칭찬은 과거에서 머문다. 한국의 미래를 결코 장밋빛으로 보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전통적으로 끝까지 투쟁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과 같은 나라의 국민들에게 민주주의가 이식될 때까지 민주주의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한국인들은 집권자가 군사 독재자이든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든 관계없이 거리에 나와 싸웠다.”(리콴유,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 리 전 총리가 걱정한 것은 한국의 사회 갈등이었다. 그의 자서전이 나온 지 15년, 그의 진단은 빗나갔을까.

리 전 총리가 누구인가. 국민소득 400달러에 불과하던 소국을 5만6000달러의 초일류 국가로 성장시킨 주인공이다. 복잡한 인종 구조에 4개 언어가 혼용되던 싱가포르다. 게다가 좌우 대결과 극단적 집단 이기주의로 불법 파업, 시위, 폭동이 줄을 잇던 나라가 아니던가. 그런 나라를 질서 정연한 선진국으로 바꿔놓은 원동력이 바로 그의 통합 리더십이었다.

불법 파업에는 엄정한 법 집행으로 맞섰다. 모두 똑같은 임금을 받는다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느냐며 호소했다. 노조 변호사 시절 동료까지 불법 파업을 이유로 체포하고 노조 등록을 취소했다. 10년도 안 돼 파업이 사라졌다. 노사정기구는 임금 인상률이 생산성 증가율을 넘을 수 없다는 룰을 만들었다. 외국인 투자가 급증하면서 일자리 걱정이 사라졌다.

영어 공용화는 더 드라마틱하다. 영어학교에서 오히려 만다린어 말레이어 타밀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다국어를 배우니 학부모들이 반겼다. 다른 학교도 영어로 수업을 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계는 만다린어를 공용어로 하자며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영어를 배운 학생들의 취업률이 높아지자 얘기가 달라졌다. 영어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명문 난양대 졸업생들이 평판이 나빠지자 직업을 구할 때 고교 졸업장만 제출하는 처지가 됐다.

뇌물과 부정부패는 자신의 측근과 고위직부터 처벌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돈 안 드는 선거를 이끌어내고, 관료들의 처우를 개선했다. 사회 갈등을 국가와 국민의 이익으로 돌려놓은 실용주의적 리더십에 ‘아시아 최고의 지도자’라는 칭송이 쏟아지는 이유다.

그런 리 전 총리의 눈에 한국은 오죽했겠는가. 그는 2006년 고려대에서 이런 강연을 했다. “TV를 통해 스타워즈에서처럼 시꺼먼 강철 마스크를 쓰고 강경 노조와 대치하는 전경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사회 갈등으로 낭비되는 국가적 에너지가 얼마나 큰가. ‘갈등 에너지’를 생산적으로 전환하라. 나라 안이 아니라 밖을 보라.”

그리고 10년이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광화문에서 시청을 잇는 ‘농성텐트 벨트’는 여전하다. 자신의 의견과 다르면 무조건 자리부터 깔고 앉는 것이 변함없는 우리의 대화 문화다. 노사정 회의는 대타협은커녕 위원장이 사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할 만큼 한심한 협의체가 된 지 오래다. 국가재정은 구멍 나는데 공무원들은 연금개혁에 반대한다며 거리로 뛰쳐나간다. 젊은이들의 고민을 들어보자며 고시촌을 찾은 여당 대표의 간담회에 청년단체는 대통령의 사진을 붙여놓고 “너나 중동 가라”는 구호를 외치는 지경이니.

하긴 국회에서조차 국민이 뽑은 대통령에게 막말을 쏟아내는 나라다. 그런 포퓰리스트들의 무한대결 속에서 법 같지도 않은 법들은 마구잡이로 쏟아진다. 정권만 탈취하면 그뿐이다. 표가 중요하지 나라와 국민 따위가 뭐 중요한가.

“민주주의는 소수의 사람들이 권력을 갖게 된 다수의 권리를 받아들이며 다음 선거에서 더욱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 정권을 잡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평화적으로 기다리는 풍토가 조성된 곳에서 제 기능을 다한다.” 리 전 총리의 민주주의론이다. 그는 한국은 영원히 싱가포르의 적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