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청년 실업이 늘어나는 이유
청년실신, 인구론, 스터디 고시…. 요즘 대학가에 떠도는 유행어다. 실업자와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청년들의 불안한 심정을 빗댄 말이 청년실신이고, ‘인문계 졸업자의 90%가 놀고 있다’는 자조 섞인 표현이 인구론이다. 취업 스터디에 들어갈 때 먼저 스터디팀을 꾸린 동료들로부터 면접까지 봐야 할 정도로 치열해진 경쟁을 빗대 스터디 고시라는 말이 생겼다. 대학생들의 취업난이 장기화하면서 생겨난 안타까운 캠퍼스 풍경이다.

청년 취업난이 장기화하면서 취업 과외까지 성행하고 있다. 자기소개서 작성과 면접 요령을 가르치는 데 300만원을 웃도는 일회성 과외도 유행이라고 한다. 서울 신촌이나 강남역 인근에는 취업준비생을 겨냥한 취업컨설팅회사들이 성업 중이다. 취업을 위해 사교육비를 써야 하는 시대다.

뒷걸음질치는 채용 여력

문제는 기업들의 채용 여력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 점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정규직 신규 채용 규모는 지난해보다 8000명 이상 감소할 전망이다. 2년 연속 감소세다. 30대 그룹 가운데 작년보다 채용 규모를 늘리는 곳은 현대자동차 등 7곳에 불과하다. 삼성 포스코 SK 등 19곳은 작년보다 채용을 줄이거나 작년 규모를 유지하는 수준이다. ‘고용 절벽’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이는 것은 무엇보다 실적 악화 때문이다. 전경련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 1103곳의 지난해 1~9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 영업이익은 17.9% 감소했다. 특히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현대중공업 기아자동차 등 신규 채용 규모가 큰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30% 넘게 감소했다. 실적이 나빠지다 보니 인력을 뽑을 여력이 크지 않다. 이 여파로 지난 2월 청년실업률은 11.1%로 최근 15년 중 최고로 치솟았다.

정부는 창조경제 활성화를 청년실업 해법으로 내놓고 있다. 창업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포석이다. 하지만 근본적 해결책으로 보긴 어렵다. 창업을 하기보다는 취직을 하려는 젊은이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더 많이 채용할 수 있도록 사업 기회를 더 많이 주는 산업구조 개편 등 획기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 氣부터 살려야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지주회사 제도를 꼽을 수 있다. 증손회사 지분율을 100%로 묶어놓다 보니 신규 투자나 인수합병(M&A)이 어렵다. 대기업과 신생 창업기업을 아우르는 생태계가 제대로 생기지 않는 이유다.

기업이 활발하게 움직이면 고용은 저절로 늘어난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정년 연장, 통상임금에 상여금 포함 등으로 인건비 부담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자리를 더 만들어내려면 획기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이런 목소리에 여전히 귀를 닫고 있다. 한쪽에서는 고용을 늘리라고 하면서 다른 쪽에선 법인세 인상, 임금 인상 등을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사정 한파’까지 몰아치고 있다. 고용 한파를 풀 수 있는 해법이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에 있다는 걸 정부가 아는지 모르겠다.

박영태 산업부 차장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