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한인 민박을 운영하는 A씨는 지난 2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강도를 만난 한국인 여행객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여행객은 아르수아에서 라비코야로 이동하던 중 두건을 쓰고 고글로 얼굴을 가린 강도 두 명을 만났다. 강도들은 총으로 위협한 뒤 숲으로 데려가 가방과 소지품을 강탈해갔다.

A씨는 이 여행객과 함께 현지 경찰을 찾아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현지 경찰은 “순례길 강도는 범인 검거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스페인 경찰과 도심 보안관들이 순례자 보호를 위한 순찰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각자가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한국인 여행객들이 늘고 있지만 강도들의 잦은 출몰로 여행객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최근 인터넷 여행 카페 등에는 강도를 만나 피해를 입었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스페인과 프랑스 접경에 위치한 산티아고 순례길은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1987년 소설가 파울루 코엘류의 ‘순례길’이라는 작품에 등장하면서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됐다. 산티아고 순례길 사무소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2009년 1079명이던 한국인 순례객은 2013년 2774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전체 순례객 중 한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28%로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가장 높다. 최근 국내 작가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소개하는 책을 연이어 출간한 데다 ‘걷기열풍’이 맞물리면서 인기가 더 높아졌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각종 사고가 빈발하면서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스페인에 거주하는 한 동포는 “한국인들은 혼자 여행하는 비율이 높고, 금품을 많이 소지한다”며 “강도들도 이런 점을 알고 있어 표적이 되기 쉽다”고 강조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산티아고 여행 땐 조난에 대비해 준비물을 철저히 챙기고, 여럿이 함께 여행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