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혁신도시] 1000년 古都 나주…에너지·농촌·콘텐츠 '융복합 도시' 변신
‘전라도’라는 지명은 전주와 나주의 앞글자를 따 만들어졌다. 명실공히 나주(羅州)가 전라도를 대표하는 도시로 손색이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도 나주는 통일신라시대 이후 1000년여간 전라도에서 두 번째 큰 도시로 영화를 누렸다.

광주광역시 서남쪽에 있는 나주는 좌측으로 함평과 무안, 아래로 영암과 강진 해남 등의 도시가 자리하고 있어 내륙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나주는 바다의 도시로 번창해 왔다. 약 2000년 전부터 나주는 영산강의 밀물이 밀려오면 바다와 맞닿았다.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이 조선시대 유배생활을 했던 지금의 소재동에 붙은 회진포구라는 지명이 증거다. 통일신라의 유학생들이 당나라로 향하고 복귀할 때 회진포구를 이용했다. 여기에서 당나라에서 흡수한 신진 문명을 풀어놓으며 나주는 그렇게 번창했다.

조선시대에도 나주가 바다의 도시로서 융성했다는 증거가 발견된다. 왜구의 2차 침략을 칭하는 정유재란(丁酉再亂) 당시 류성룡은 “수병의 군량은 나주에 준비하고 육병의 군량은 전주에 준비해 두어야 지탱할 수 있습니다”라고 건의하는 문장이 나온다. 전라도에서 전주가 육지의 중심이라면, 나주는 바다의 중심이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나주는 6·2전쟁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며 과거에 누렸던 영화를 모두 놓쳤다. 이렇다 할 공업 기반이 없고 광주가 커지자 나주는 농촌으로 줄어들었다. 1960년 22만명이 넘던 인구는 작년 8만8731명으로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이런 나주가 다시 태어나고 있다. 서울과 성남 등 수도권에 몰려 있던 공공기관들이 전국 10개 도시로 이전하는 혁신도시의 정착 단계가 마무리되면서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 지난 17~18일 찾은 광주전남혁신도시가 있는 나주는 높은 건물과 상가 공원 조성 공사가 끝나가면서 해당 공공기관 임직원들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특히 광주전남혁신도시는 전국 10개 혁신도시 중 유일하게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등 두 광역자치단체가 합쳐서 만들었다. “통합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란 설명이다.

이에 따라 광주전남혁신도시엔 한국전력을 비롯해 한전KPS 한전KDN 전력거래소 등 국내 중추 전력기관이 몰려 ‘에너지밸리’이자 ‘대한민국 전력수도’가 됐다. 여기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농어촌공사 등 농업 관련 공기업과 콘텐츠진흥원 저작권위원회 문화예술위원회 등도 자리를 잡으면서 에너지와 농촌, 스토리까지 합쳐져 미래의 산업 모델인 ‘융복합’의 모태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광주전남혁신도시가 10개 혁신도시 중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모델로 떠오르는 이유다.

해당 공공기관들도 나주 이전을 계기로 제2 창업 수준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한전은 에너지절약형으로 본사를 꾸미고 대한민국 대표 전력 공기업으로서 융합 산업 유치에 나서고 있다. 한전KPS 한전KDN 등도 한전과 공조하고 있고, 농어촌공사는 구글 수준으로 본사 회의실 등을 꾸며 신사옥 마련을 계기로 직원의 창의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광주전남혁신도시가 자리 잡은 곳의 옛 지명은 ‘신도(新都)’다. 윤지향 나주시 학술연구사는 “이곳에 광주전남혁신도시가 생길 것이라고 우리 선조들이 예견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며 “지금 나주의 새로운 도약은 갑작스러운 게 아니라 1000년여간 축적돼온 나주의 에너지가 모아진 것 아닌가 한다”고 했다.

나주=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