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투자철학 공유 '버핏·레만 듀오'…세계 식품업계 쥐락펴락
2002년 면도기업체 질레트의 정기 이사회에 참석한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은 회의실에 처음 보는 인물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큰 키에 단단한 체구인 그는 자신을 브라질 사모펀드(PEF) 회사 3G캐피털의 호르헤 레만이라고 소개했다.

그로부터 13년 후인 25일(현지시간) 버핏과 레만이 공동 소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 케첩업체 하인즈는 미국 식품업체 크래프트를 인수합병(M&A)한다고 발표했다.

‘크래프트하인즈’로 이름을 바꾼 합병회사의 연매출은 280억달러(약 31조원)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식음료회사가 된다. 두 사람은 이미 2013년 하인즈, 2014년 캐나다 최대 커피체인 팀호튼스를 공동 인수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해 85세인 버핏과 75세인 레만이 글로벌 식품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식음료 공동 관심 토대로 연대

이번 M&A는 지난달 버핏이 벅셔해서웨이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서한에서 이미 예고됐다. “3G캐피털은 매우 높은 성과 기준으로 경쟁자를 능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들과 더 많은 활동을 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버핏은 하인즈를 공동 인수했을 때도 그해 벅셔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레만은 고급스럽고 세련된 사람”이라고 말했다. 2010년 전까지만 해도 “단기 투자에만 관심을 갖는 PEF는 포르노 판매점과 다를 게 없다”며 PEF업계를 싸잡아 비판했던 것과 상반된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출생해 2000년 이전까지 주로 브라질에서만 활동한 레만은 버핏과 특별한 공통분모도 없다.

하지만 식음료업계에 대한 공통의 관심이 두 사람을 묶었다. 레만은 인터브루와 안호이저부시를 사들여 세계 최대 맥주회사 AB인베브를 설립하고 2010년에는 버거킹을 사들였다. 생활밀착형 상품 투자로 유명한 버핏은 1972년 캔디회사인 씨즈캔디를 일찌감치 인수하고 코카콜라에도 투자하고 있다.

질레트 이사회 이후 정기적으로 만난 두 사람은 활발한 토론으로 투자 철학과 방향에 충분한 공감대를 이뤘다. 제임스 킬츠 질레트 최고경영자는 “중국 배터리업체 투자 안건이 이사회에 올라온 적이 있는데 두 사람은 상반된 입장으로 결론이 날 때까지 토론했다”며 “결국 투자금액이 적정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고 주장한 레만이 승리했다”고 전했다.

◆버핏의 투자전략도 영향받아

50년간 고수해온 버핏의 투자전략도 레만과 손잡은 이후 바뀌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레만이 3G캐피털의 경영진을 인수회사에 보내 구조조정하는 궂은일을 하면 버핏의 벅셔해서웨이는 앉아서 수익을 챙긴다”며 “감원이나 공장 폐쇄 없이 싸게 기업을 매입해 가치가 오를 때까지 기다리던 과거 버핏의 투자와 다르다”고 분석했다.

클리프 갤런트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는 “버핏은 3G캐피털의 경영진이 인수한 회사에 들어가면 조직을 바꿔 수익을 높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차이점도 있다. 코카콜라를 마시고 씨즈캔디를 입에 무는 등 투자 회사 제품을 애용하며 광고효과를 노리는 버핏과 달리 레만은 인수기업을 철저히 투자 대상으로만 바라본다. 세계 최대 맥주회사를 갖고 있지만 물 이외 음료는 마시지 않고, 햄버거는 버거킹 인수 직후 한 번 먹어봤을 뿐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