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별로 지지 경제정책도 달라…인구 고령화가 부른 비극
젊은 세대(20, 30대)와 기성세대(50대 이상)의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단순한 문화적·정치적 선호를 넘어 경제 영역에서 생존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주유소나 프랜차이즈 아르바이트 자리를 두고 청년과 노인이 경쟁한다. 심지어 공공 도서관에서도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는 청년들과 학구열을 불태우는 어르신들의 자리싸움이 빈번할 정도라고 한다. 자식 세대와 부모 세대, 그 치열한 ‘세대 전쟁’이 우리 일상 곳곳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인구 고령화가 부른 비극

중소기업 규모의 홍보대행사에서 6년째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홍세현(36) 씨는 올가을 남자 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 자금이다. 직장 생활 6년 동안 절반 이상 임금이 동결돼 있던 홍 씨는 흔히 말하는 재형저축 하나 들어 놓지 못했다. 매달 카드 값을 갚느라 저축이나 재테크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이다. 막상 결혼식을 치르려면 예식장 비용부터 전셋집 마련까지 생각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홍 씨는 “결혼식을 최대한 간소하게 치르더라도 이후 생활비까지 하면 지금의 소득으로는 턱도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전세 대출에 나가는 이자 비용이라도 아껴 볼 요량으로 큰맘 먹고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놀란 것은 부모의 반응이었다. 홍 씨가 요구한 돈의 3분의 1 규모만 도와줄 수 있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홍 씨는 “처음엔 부모님의 말씀에 섭섭했던 게 사실”이라며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비슷한 일로 부모님과 다투기까지 했다는 이도 꽤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생각해 보면 당신들 노후 자금도 빠듯한데 못 이기는 척 자식에게 져 준 것 아니겠느냐”며 “자식으로서도 능력이 안 돼 부모에게 손을 내미는 것 같아 부끄럽다”고 말했다.

나이를 먹도록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한 자식들의 한숨이 깊어가고 있다. 그러나 ‘자식들 뒷바라지’에 아버지들 또한 시름이 깊어가는 건 매한가지다. 지난 2월 중학교 교사를 명예퇴직한 이연준(61) 씨는 최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야간 근무를 맡은 그는 오후 10시부터 오전 9시까지 일하고 시간당 3500원을 받는다. 이 씨가 은퇴하자마자 아르바이트에 뛰어든 데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 매달 300만 원 정도의 연금을 받고 있지만 주택 대출 비용과 자녀들 학자금 대출 등등을 고려하면 이 씨 부부의 생활비를 충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씨는 여전히 독립하지 못한 자녀들의 생활비까지 부담해야 하는 처지다.

그의 딸(32세)은 한 여성 잡지사의 어시스턴트로 근무하고 있지만 100만 원이 조금 넘는 월급을 받고 있다. 지난해 대학원을 졸업한 아들(29)은 취업 준비생이다. 이 씨는 “젊었을 때는 자식들 가르치느라 등허리가 휘었는데 부모 노릇이 끝이 없는 것 같다”며 “지금 당장은 애들이 갚을 능력이 안 되니 학자금 대출도 내 몫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몇 년 뒤면 아이들이 결혼도 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앞날이 캄캄하다”며 “아내와 지금 당장 우리 씀씀이를 줄이더라도 애들 생각해서 저축을 더 늘리기로 얘기했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지난 3월 4일 발표한 가계 동향 조사에 따르면 2014년 20, 30대 가구주 가계의 소득 증가율은 0%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3%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실질소득이 줄어든 셈이다. 이와 비교해 50대의 가계 소득 증가율은 7%, 60세 이상은 4%였다. 20, 30대와 50대 이상 세대 간의 소득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통계 결과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우리 사회에서 세대 간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며 “근본적으로는 고령화에 따른 사회구조 변화로 세대 간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가계 소득 증가는 부동산·금융 소득 등 다양한 변수가 있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무리지만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임금 소득’이다. 그렇다면 세대별 임금 소득의 차이는 왜 이토록 벌어지게 된 것일까. 현재 한국의 인구구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1차 베이비붐 세대는 1955~1963년생까지, 2차 베이비붐 세대는 대략 1964~1974년생까지다. 실제로도 1970년대 평균 출산율은 4.71명인데 비해 1980년대 이후 2.92명으로 뚝 떨어진다. 더욱이 이들 베이비붐 세대가 사회에 진출하던 1970~1990년대는 경제성장률이 7%를 넘어서던 고성장 시기였다. 그 덕분에 이들 세대의 상당수는 정규직에 연공서열식 ‘호봉제 임금체계’로 사회에 진출할 수 있었다. 현재도 이 같은 체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이와 비교해 1975년대 이후 탄생한 20, 30대는 연봉 계약식 ‘성과급 임금체계’를 따르는 게 대다수다. 이 교수는 “50대 이상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임금도 올라가는 구조”라며 “반면 20, 30대는 저성장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사회에 진출하면서 임금 정체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젊은이 필패’ 구조 바꿔야

이 같은 임금 격차는 일자리와 부동산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세대 전쟁’의 시작이 된다. 이 교수는 “장년층의 임금이 올라갈수록 기업은 청년층의 고용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젊은 세대 고용의 질이 악화되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사회 진출의 벽이 높아질수록 젊은 세대의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고 이는 고스란히 부모 세대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 부모 세대가 은퇴 후에도 아르바이트와 같은 일자리 전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와 부모 세대는 경제정책과 관련해서도 이해관계가 크게 엇갈리는 측면이 있다”며 “인구구조상 부모 세대의 수가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 세대에 유리한 경제정책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임금 소득의 비중이 큰 젊은 세대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발생하더라도 임금 상승률이 높아지는 정책을 선호한다. 반면 노후 자금으로 생활해야 하는 부모 세대에게 물가 상승은 자신들의 자산이 감소하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낳는다. 이 때문에 부모 세대 대부분은 물가 안정을 유도하는 정책을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에 과세하는 정책 또한 마찬가지다. 전 교수는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는 부동산세나 금융소득세에 반대할 이유가 적지만 부모 세대는 이 같은 자산 과세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 한국은 근로소득세보다 자산소득세가 낮기 때문에 부모 세대에게 유리한 세제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월 한국납세자연맹의 분석 결과 같은 소득을 올렸을 때 직장인 A 씨와 임대 사업자 B 씨의 결정 세액을 비교한 결과 A 씨가 B 씨에 비해 12배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문제는 이대로 가면 ‘젊은이 필패’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2차 베이비붐 세대인 1974년생의 은퇴 시점인 향후 15~20년 정도는 세대 전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사회의 첫 진출부터 흔들리는 젊은 세대에 무력감이 퍼진다면 한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을 잃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부모 세대가 먼저 양보해 젊은 세대의 ‘숨통’을 틔워 주는 게 부모 세대도 함께 살 길”이라며 “임금체계나 세금 체제 등의 개편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