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취업 박람회와 청년 취업 박람회. 구직 시장에서 젊은 세대와 부모 세대의 충돌이 심화되고 있다.
실버 취업 박람회와 청년 취업 박람회. 구직 시장에서 젊은 세대와 부모 세대의 충돌이 심화되고 있다.
‘알포 세대’가 등장했다. 취직·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 세대’에 이어 아르바이트까지 포기한 젊은 세대를 일컫는 신조어다. 이들이 ‘알포 세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르바이트에서마저 50대 이상 부모 세대와의 경쟁에 밀렸기 때문이다.

세대 전쟁의 가장 큰 격전지는 ‘취업 전선’이다. 세대를 막론하고 ‘밥벌이’와 직접 연관돼 있는 만큼 모든 경제활동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자리 전쟁에서 젊은 세대의 신음소리가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간다. 자식들의 아우성을 지켜봐야 하는 부모 세대의 마음도 편할 리 없다. 이제는 취업을 넘어 아르바이트까지 번진 ‘승자 없는 전쟁’에 아버지와 아들 모두 지쳐가는 형국이다.

아르바이트 시장마저 위협

올해 대학 졸업 2년 차인 윤승민(30) 씨의 하루 일과는 도서관에서 시작해 스터디로 끝난다. 올해로 3년째 7급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그는 현재 한 고시원의 총무로 일하며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매일 12시간씩 꼬박 고시원을 지키는 대가로 그가 받는 임금은 매달 60만 원. 부모님께는 매달 40만 원씩 여전히 용돈을 받고 있다. 고시원에서 숙식을 모두 해결하고 있지만 그의 생활비는 늘 모자란다. 먹는 것, 입는 것을 아끼는 데는 이골이 났지만 시험공부에 필요한 교재 구입비, 동영상 강의, 스터디 카페에 필요한 지출만 해도 다달이 50만~60만 원을 거뜬히 넘어서기 때문이다.

윤 씨는 “요즘은 스터디만 가도 채용 규모 만큼이나 궁금해 하는 것이 공무원 퇴직자 규모”라고 말했다. 퇴직자 규모가 늘어날수록 신규 채용 역시 늘어날 여지가 클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는 “학원에도 40, 50대 분들이 점점 늘고 있는데 그렇지 않아도 좁은 취업문에 경쟁자만 더 늘어나는 셈”이라며 “내년부터 공무원 정년이 연장되면 당장 신규 채용 규모가 줄어들 텐데 반갑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윤 씨의 생각처럼 ‘아버지 세대가 아들 세대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것’이 과연 사실일까. 이미 고용 지표에서는 이 같은 세대 간 일자리 경쟁의 징후가 나타난 지 오래다. 실제로 2014년 11월 통계청의 ‘임금 근로 일자리 행정 통계’에 따르면 50대 일자리 수는 302만7000개로 20대 일자리 수 300만1000개를 크게 앞질렀다. 은퇴 후인 50대가 한창 사회생활에 진입하는 20대를 일자리 수에서 추월한 것이다. 이보다 심각한 것은 정규직 임금 근로자의 비율이다. 2014년 3월 기준 50대 정규직 임금 근로자 수는 236만9000명이었다. 이와 비교해 20대 정규직 임금 근로자는 229만 명으로, 50대보다 약 8만 명 적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20대는 대학이나 군 입대 등의 이유로 상대적으로 취업을 미루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무엇보다 ‘질 높은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50대 이상 인구수가 증가한 영향이 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엔 구조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은퇴’전까지 기존의 일자리를 유지하면 되는 부모 세대에 비해 높은 취업 문턱을 넘어야 하는 젊은 세대는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다. 부모 세대의 선택에 따라 젊은 세대의 취업이 좌우되는 구조인 셈이다. 실제로 정규직 일자리 경쟁에서 50대에 밀려난 20대는 비정규직의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는 추세다. 2015년 1분기 고용 동향에 따르면 20대 신규 취업자 중 정규직은 전년 동기 대비 1.8% 증가(232만 명)한 반면 비정규직은 5.8%나 증가(109만 명)했다.

최근에는 아르바이트 구직에서도 세대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아르바이트 구직 포털 사이트 알바천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대의 아르바이트 구직자 수 변동 추이는 50대 이상에 비해 비교적 낮은 수치를 나타낸다. 2010년 20대의 구직자 수는 21만2250명에서 2014년 54만7995명으로 158.2% 늘어났다. 이와 비교해 50대는 2010년 2944명에서 2014년 1만8297명으로 521.5% 증가했다. 60대 구직자는 같은 기간 288명에서 3460명으로 1101.4% 늘었다. 문제는 50대 이상 구직자들이 20대와 같은 일자리를 지원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50대 이상 구직자 이력서 지원 현황을 살펴보면 커피 전문점은 2011년 502명에서 2014년 3718명, 제과점은 같은 기간 409명에서 2441명, 패밀리레스토랑은 264명에서 1803명으로 늘어났다. 이은주 서울시 구로고령자취업알선센터 과장은 “베이비붐 세대는 재취업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며 “그에 비해 자신의 경력을 살릴 만한 일자리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직으로 빠지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의 세대 전쟁이 격화될수록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이 ‘60세 정년 연장’이다. 2013년 국회를 통과한 ‘60세 정년 연장법’은 2016년부터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임직원 300인 이상 기업은 당장 내년 1월부터, 300인 미만 기업은 2017년 1월부터 각각 정년이 60세로 늘어난다.

서원석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년 연장을 추진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청년 실업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가”라며 “기업들의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정년만 연장된다면 청년 실업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분석 결과 20년 이상 근무한 직원의 임금수준은 1년 미만 신입 사원에 비해 218% 수준이다. 이는 독일 126%, 영국 101%에 비해 매우 높다. 임금으로만 단순 비교해도 정년 연장에 따른 고령자 1명에 들어가는 비용이면 신입 사원 2명 이상을 채용할 수 있다. 본격적인 정년 연장을 시행하기에 앞서 임금 피크제 등 정년 연장자들의 임금체계에 대한 합의가 선행돼야만 하는 이유다.

그러나 정년 연장 시행을 불과 9개월가량 앞둔 현재에도 기업들은 이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상황이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3월 3일 국내 300개 기업(대기업 132개, 중소기업 168개)을 조사해 발표한 ‘정년 60세 시대 대비 현황’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전체 기업의 53.3%에 달하는 160개사가 “대비가 미흡하다”고 답했다. 특히 2014년 1월까지 임금 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은 17.3%(52개)에 그쳤다. 98개(32.7%)는 조만간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66개(22.0%)는 논의 계획조차 잡지 못했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당장 신규 인력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지난 3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상반기 신규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64.7%에 달하는 134개 기업이 아직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보다 채용을 늘리겠다’고 답한 기업은 12개(5.8%)에 불과했다. 작년과 유사한 수준의 채용 계획을 세운 기업이 37개(17.9%), 지난해보다 규모를 줄이기로 한 곳은 14개(6.8%)로 나타났다. 아예 사람을 뽑지 않겠다는 기업도 10개(4.8%)나 됐다.

“임금 피크제 등 부모 세대 양보 필요”

신규 채용을 늘리지 못하는 이유로는 국내외 경기 악화가 26.4%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구조조정 등 회사 내부 사정과 정년 연장에 따른 퇴직 인원 감소 또한 23.6%에 달했다. 60세 정년 연장이 실질적으로 기업들의 신규 채용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임금 피크제와 같은 부모 세대의 양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부모 세대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남의 자식들’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식’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연구위원은 “임금 피크제 등을 통해 부모 세대의 임금을 줄이고 이를 청년들의 고용 확대 재원으로 활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이와 함께 기업이 청년들을 조기에 취업시켰을 때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 또한 효과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1007호 제공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