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천안함 5주기를 보내며
2010년 3월26일 밤 천안함이 피격됐다.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배가 두 동강 나고 46명의 꽃다운 우리 장병들이 산화했다. 나라는 충격에 빠지고, 국민은 슬픔에 잠겼다. 그로부터 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상황은 호전되기는커녕 더 악화되고 있다. 북한 정권은 지금도 자기들 소행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우리 내부에도 여기에 맞장구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천안함 폭침은 김정일 정권이 내부 불만을 잠재우고 고립에서 탈피하기 위해 저지른 도발이다. 조금 더 올라가면 개방, 개혁을 외면하고 억압과 공포를 무기로 유지할 수밖에 없는 북한 체제의 모순이 불러온 비극이다. 더 근원적으로는 분단의 빙벽이 만들어낸 악몽이다. 분단이 허물어지지 않고 북한 체제가 변화하지 않는 한, 이 같은 비극은 언제 또 되풀이될지 모른다.

천안함 5주기를 맞은 지금, 우리 사회 화두는 북한의 사과 여부에 집중된 느낌이다. 북한 정권이 사과하면 천안함 문제가 해결될까? 46명의 젊은이를 살해한 범죄는 진실이 규명되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져야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그나마 북한 정권으로부터 사과받는 일은 연목구어(緣木求魚)처럼 불가능한 일이다. 사과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일을 저지른 김정일 위원장뿐이다. 북한에서 김 위원장은 여전히 살아 있는 국방위원장이고 신격화된 존재다. 누가 그의 행동을 잘못으로 규정하고 사과를 표명할 수 있을 것인가. 김정은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이 북한 체제의 모순이다.

우리는 더 크고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북한 사회를 변화시켜 북한 체제의 모순을 풀어야 한다. 남과 북의 동질성을 폭발적으로 확대시켜 분단의 빙벽을 녹여야 한다. 평화통일이 이뤄지면 천안함 폭침의 진상이 민낯을 드러내고 책임자를 처벌해 희생자의 영혼을 달래줄 수 있을 것이다.

슬픔을 슬픔으로 달랠 수 없고, 충격을 충격으로 극복할 수 없다. 우리는 슬픔을 녹이고 충격을 넘어서야 한다. 이 비극을 잉태한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접촉을 통한 변화’ 이외의 다른 길이 없다. 우리의 평화적인 역량을 북한 사회로 밀어 넣어야 한다. 밀물이 들어와 뻘에 박혀 있는 배를 띄우듯이 통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피지도 못하고 스러진 용사들의 소망일 것이다. 통일의 공간이 열릴 때 천안함 용사들의 영혼도 비로소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이인제 < 새누리당 최고위원·국회의원 ij@assembly.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