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되찾은 일본 기업, 더 강해졌다] "최고의 투자 신호는 위기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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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일본 최대 부동산개발사 모리빌딩의 야마모토 가즈히코 사장
"부동산 시장 붕괴 때 롯폰기힐스 사업"
불황에도 최고급 빌딩 지어…'관리+α'로 100% 임대
정부와 1000번 이상 회의…토지소유자·시민도 감동
해외로 과감하게 눈돌려…상하이 국제금융센터 건설
"부동산 시장 붕괴 때 롯폰기힐스 사업"
불황에도 최고급 빌딩 지어…'관리+α'로 100% 임대
정부와 1000번 이상 회의…토지소유자·시민도 감동
해외로 과감하게 눈돌려…상하이 국제금융센터 건설
일본 도쿄 시내에는 롯폰기힐스, 도라노몬힐스 등 ‘힐스(hills)’라는 브랜드가 붙은 최고급 빌딩이 여러 개 있다. 모두 부동산업체인 모리빌딩이 지은 건물이다. 힐스 빌딩이 유명세를 타면서 ‘힐스족(族)’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힐스 빌딩에 근무하면서 건물 내 고급 식당에서 그들끼리 사교 모임을 하는 상류층을 뜻한다. 모리빌딩이 일본에서 최고급 빌딩의 대명사로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모리빌딩은 직접 땅을 사고 건물의 콘셉트를 기획하는 사업 방식을 고수한다. 건설은 외주를 주지만 건물을 분양하지 않고 직접 소유하며 임대한다. 1990년 이후 줄곧 자산가격이 하락한 일본에서 망하기 딱 좋은 사업모델이다. 그러나 모리빌딩은 성장을 계속했다. 도쿄에만 111개의 빌딩을 갖고 있다. 중국 상하이의 랜드마크인 ‘국제금융센터’(101층, 높이 492m)도 소유하고 있다. 모리빌딩에서 기획 등을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인 모리도시기획의 야마모토 가즈히코 사장(사진)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부동산 경기가 추락하면 오히려 싼값에 토지를 매입할 기회가 생긴다”며 “경쟁 업체와 차별화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위기는 최고의 투자 신호가 된다”고 성장 비결을 설명했다.
▷일본 건설업계는 1990년대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당시 모리빌딩은 어땠나.
“일본 부동산 가격이 단기간에 3분의 1로 떨어졌다. 궁지에 몰리니 오히려 역발상이 떠올랐다. 당시 도쿄에는 빈 땅이 많았다. 싼값에 빈 땅을 사들였다. 그때 추진한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롯폰기힐스’다.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국내 사정이 어려워 해외로도 눈을 돌렸다. 마침 톈안먼(天安門) 사건 직후여서 중국 정부는 이미지 회복을 위해 외국 기업에 좋은 조건을 내걸고 유치에 열을 올렸다. 덕분에 2008년 상하이에 국제금융센터를 지을 수 있었다.”
▷장기 불황기에 모리빌딩은 최고급 빌딩을 계속 지었고 매번 임대율 100%를 달성했다. 비결은 무엇인가.
“부동산 거품이 꺼진 이후 오피스가 남아돌았다. 다른 회사들은 임대료를 낮추기 위해 새로 짓는 건물의 질을 계속 떨어뜨렸다. 모리빌딩은 시대의 흐름을 유심히 살폈다. 경기가 좋을 때 오피스는 ‘관리하는 곳’이다. 사무실과 책상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경기가 어려워지면 오피스에서 일하는 사람의 부가가치는 오히려 올라가야 한다. 관리 이상의 일을 해줘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도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점점 단순 관리직에서 정보기술(IT), 기획, 투자 쪽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지적(知的) 생산자’로 정의하고 그에 맞는 건물을 지었다. 건물에 정원을 만들고, 식당도 특별한 곳만 입점하도록 했다. 내진 설계도 더 튼튼히 하고 건물 지하에는 2만명이 5일간 먹고 살 수 있는 비상 식량을 마련했다. 대신 임대료는 주변 건물보다 50% 정도 비싸게 정했다. 지적 생산자들은 임대료를 아까워하지 않는다.”
▷롯폰기힐스의 경우 정부 승인을 받는 데만 14년이 걸렸다고 들었다. 한국에서도 초고층 빌딩인 제2롯데월드 승인에 오랜 기간이 걸려 논란이 됐다.
“토지 소유자의 반대가 많았다. 정부에서도 이들의 눈치를 보며 뜸을 들였다. 고층 건물에 대한 반감도 적지 않았다.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말고, 모두를 감동시키자’는 전략을 세웠다. 정부와 1000번이 넘는 회의를 하면서 건물을 지었을 때 각종 부작용을 상세히 공개했다. ‘일본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 고층 빌딩은 필수’라는 주장도 굽히지 않았다. 대신 건물에서 가장 임대료가 비싼 52층에 도쿄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겠다고 했다. 빌딩 주변엔 충분한 녹지를 조성했고 무료로 개방하는 이벤트 광장도 만들었다. 건물이 완성되자 정부와 도쿄 시민, 땅주인 모두가 감동했다.”
▷초고층 빌딩을 짓는 데 여전히 오랜 기간이 걸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때 ‘토지개혁기본법’을 만들었다. 롯폰기힐스를 둘러싼 논란이 법 제정의 계기였다. 지역 주민과 개발자가 합의하면 건물 건축에 대한 승인을 무조건 6개월 내에 해줘야 한다는 내용이다. 덕분에 최근 지은 도라노몬힐스는 승인에서 완공까지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모리빌딩은 한국에서도 삼성동 파르나스타워, 종각역 인근 그랑서울 등 상업시설을 컨설팅해 큰 성공을 거뒀다.
“타운매니지먼트 팀이라는 조직에서 주변 환경과 시대 흐름을 고려해 건물의 콘셉트를 정했다. 최근엔 ‘물건을 팔아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 문화를 파는 시대가 열린다’는 콘셉트를 정했다. 그래서 빌딩도 ‘문화공간’을 콘셉트로 하고 있다.”
■ 모리빌딩그룹
1959년 경제학자였던 모리 다키치로 회장이 창업했다. 일본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모리 회장은 1991~1992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모리 회장이 1993년 사망한 뒤에는 아들인 모리 미노루 회장이 그룹을 이끌었고, 2012년 미노루 회장이 사망한 뒤 소유와 경영을 분리했다. 지난해 기준 112개의 빌딩을 소유하고 있으며, 연간 임대수익은 2650억엔이다.
LG경제연구원 공동기획
도쿄=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
모리빌딩은 직접 땅을 사고 건물의 콘셉트를 기획하는 사업 방식을 고수한다. 건설은 외주를 주지만 건물을 분양하지 않고 직접 소유하며 임대한다. 1990년 이후 줄곧 자산가격이 하락한 일본에서 망하기 딱 좋은 사업모델이다. 그러나 모리빌딩은 성장을 계속했다. 도쿄에만 111개의 빌딩을 갖고 있다. 중국 상하이의 랜드마크인 ‘국제금융센터’(101층, 높이 492m)도 소유하고 있다. 모리빌딩에서 기획 등을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인 모리도시기획의 야마모토 가즈히코 사장(사진)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부동산 경기가 추락하면 오히려 싼값에 토지를 매입할 기회가 생긴다”며 “경쟁 업체와 차별화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위기는 최고의 투자 신호가 된다”고 성장 비결을 설명했다.
▷일본 건설업계는 1990년대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당시 모리빌딩은 어땠나.
“일본 부동산 가격이 단기간에 3분의 1로 떨어졌다. 궁지에 몰리니 오히려 역발상이 떠올랐다. 당시 도쿄에는 빈 땅이 많았다. 싼값에 빈 땅을 사들였다. 그때 추진한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롯폰기힐스’다.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국내 사정이 어려워 해외로도 눈을 돌렸다. 마침 톈안먼(天安門) 사건 직후여서 중국 정부는 이미지 회복을 위해 외국 기업에 좋은 조건을 내걸고 유치에 열을 올렸다. 덕분에 2008년 상하이에 국제금융센터를 지을 수 있었다.”
▷장기 불황기에 모리빌딩은 최고급 빌딩을 계속 지었고 매번 임대율 100%를 달성했다. 비결은 무엇인가.
“부동산 거품이 꺼진 이후 오피스가 남아돌았다. 다른 회사들은 임대료를 낮추기 위해 새로 짓는 건물의 질을 계속 떨어뜨렸다. 모리빌딩은 시대의 흐름을 유심히 살폈다. 경기가 좋을 때 오피스는 ‘관리하는 곳’이다. 사무실과 책상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경기가 어려워지면 오피스에서 일하는 사람의 부가가치는 오히려 올라가야 한다. 관리 이상의 일을 해줘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도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점점 단순 관리직에서 정보기술(IT), 기획, 투자 쪽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지적(知的) 생산자’로 정의하고 그에 맞는 건물을 지었다. 건물에 정원을 만들고, 식당도 특별한 곳만 입점하도록 했다. 내진 설계도 더 튼튼히 하고 건물 지하에는 2만명이 5일간 먹고 살 수 있는 비상 식량을 마련했다. 대신 임대료는 주변 건물보다 50% 정도 비싸게 정했다. 지적 생산자들은 임대료를 아까워하지 않는다.”
▷롯폰기힐스의 경우 정부 승인을 받는 데만 14년이 걸렸다고 들었다. 한국에서도 초고층 빌딩인 제2롯데월드 승인에 오랜 기간이 걸려 논란이 됐다.
“토지 소유자의 반대가 많았다. 정부에서도 이들의 눈치를 보며 뜸을 들였다. 고층 건물에 대한 반감도 적지 않았다.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말고, 모두를 감동시키자’는 전략을 세웠다. 정부와 1000번이 넘는 회의를 하면서 건물을 지었을 때 각종 부작용을 상세히 공개했다. ‘일본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 고층 빌딩은 필수’라는 주장도 굽히지 않았다. 대신 건물에서 가장 임대료가 비싼 52층에 도쿄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겠다고 했다. 빌딩 주변엔 충분한 녹지를 조성했고 무료로 개방하는 이벤트 광장도 만들었다. 건물이 완성되자 정부와 도쿄 시민, 땅주인 모두가 감동했다.”
▷초고층 빌딩을 짓는 데 여전히 오랜 기간이 걸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때 ‘토지개혁기본법’을 만들었다. 롯폰기힐스를 둘러싼 논란이 법 제정의 계기였다. 지역 주민과 개발자가 합의하면 건물 건축에 대한 승인을 무조건 6개월 내에 해줘야 한다는 내용이다. 덕분에 최근 지은 도라노몬힐스는 승인에서 완공까지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모리빌딩은 한국에서도 삼성동 파르나스타워, 종각역 인근 그랑서울 등 상업시설을 컨설팅해 큰 성공을 거뒀다.
“타운매니지먼트 팀이라는 조직에서 주변 환경과 시대 흐름을 고려해 건물의 콘셉트를 정했다. 최근엔 ‘물건을 팔아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 문화를 파는 시대가 열린다’는 콘셉트를 정했다. 그래서 빌딩도 ‘문화공간’을 콘셉트로 하고 있다.”
■ 모리빌딩그룹
1959년 경제학자였던 모리 다키치로 회장이 창업했다. 일본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모리 회장은 1991~1992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모리 회장이 1993년 사망한 뒤에는 아들인 모리 미노루 회장이 그룹을 이끌었고, 2012년 미노루 회장이 사망한 뒤 소유와 경영을 분리했다. 지난해 기준 112개의 빌딩을 소유하고 있으며, 연간 임대수익은 2650억엔이다.
LG경제연구원 공동기획
도쿄=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