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되찾은 日기업 더 강해졌다] 변방 계열사 老 경영인, 히타치號 살리다
히타치제작소는 2008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에 일본 제조업 사상 최대 적자를 냈다. 다른 무엇보다 파산 직전의 회사를 구할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를 찾는 것이 급했다. 히타치가 찾은 사람은 계열사인 히타치 소프트웨어엔지니어링의 상담역(고문)으로 물러나 있던 당시 69세의 가와무라 다카시(사진)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재계에선 실망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위기 상황에 곧 일흔인 사람을…” “그만큼 인재가 없나”라는 수군거림이 계속됐다.

그럴 만도 했다. 1939년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태어난 그는 1962년 도쿄대 공학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그해 히타치에 입사한 이후 히타치그룹에서만 근무한 ‘뼛속까지 히타치 맨’이다. 하지만 임원이 된 뒤에는 주력 계열사인 히타치제작소에 머물지 못한 채 계열사를 전전했다. 그런 만큼 위기의 히타치를 구해낼 적임자인지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이 오갔다.

CEO 취임 요청을 받은 가와무라는 1주일간 고민 끝에 수락했다. 그는 “50년 가까이 몸담은 히타치가 전대미문의 위기에 처한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며 “히타치를 떠나 있어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가와무라는 CEO를 수락하는 대신 1년간 사장과 회장을 겸임하게 해 줄 것을 요구했다. 비상사태에서는 무엇보다 ‘속도’가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회장 취임 뒤 회사의 정체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종합 전기업체’라는 간판을 내리고 정보기술(IT)을 토대로 한 ‘사회 인프라 기업’ 실현을 목표로 내걸었다. 디스플레이, TV, PC 사업을 모두 접었다. 구조조정만으로는 히타치가 어디로 가는지 직원들이 모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체 직원 36만명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1년간 전 세계 95개 사업장을 돌며 젊은 30대 과장들과 직접 얘기를 나눴다. 침몰하는 히타치에서 직원들이 하나둘씩 희망을 보기 시작했다.

간부들에게는 자신이 히타치를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최후의 남자(라스트 맨)’가 될 것을 주문했다. 그는 “리더가 강한 라스트 맨 의식을 지니면 그 조직은 반드시 부활한다”는 확고한 경영철학을 가졌다. 절박한 심정으로 경영하면 어떤 지경에 처한 회사라도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런 노력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히타치는 ‘V자’ 회복에 성공했다. 2010년에는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가와무라 회장은 히타치를 위기에서 구한 주인공으로 추앙받았다. 그의 몸값이 최고에 달했던 2014년 그는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회사를 정상화하는 것까지가 ‘라스트 맨’으로서 자신의 책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