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과기(科技)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해야
지난해 한국 경제는 3.3% 성장하는 데 그쳤다. 일자리 창출에도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일하고 싶어 하는 많은 청년과 여성들이 취업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다. 청년 실업률은 11.1%로 1999년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용률을 높이는 방안은 없을까. 시간선택제 확대를 생각할 수 있다. 시간선택제는 전일제 근로자보다 일하는 시간과 봉급은 적지만 복리후생, 근로조건 등에서는 차별받지 않는 제도로 ‘시간제 정규직’이라고 할 수 있다. 2011년 기준 한국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연평균 2116시간으로, 1696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근로자들보다 훨씬 많이 일하는 편이다. 이런 한국의 오랜 근로시간을 쪼개 양질의 시간제 정규직을 만든다면 그만큼 일자리를 늘릴 수 있고, 근로자 복지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독일은 2008년에 근로시간 단축 지원을 강화하고 고용 형태의 다양화를 통해 고용률 70.2%를 달성했다. 네덜란드는 1999년에 주 30시간 미만의 시간선택제 근무의 활성화를 통해 고용률 70.8%를 달성했다. 이 제도는 특히 출생과 육아 부담을 짊어지고 있는 여성들과 장년층 퇴직자들에게 많은 취업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과학기술 연구분야의 경우 관련 분야에 대한 고급 지식과 경험을 보유한 연구 종사자가 핵심 자산이자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발전 속도가 빠른 세계 연구시장에서 짧은 기간의 경력 단절이라도 상당한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 연구기관 종사자의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작년 6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주관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구기관 근로자의 71.2%가 시간선택제 도입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올해부터 ‘출연연구원 시간선택제 일자리 가이드라인’을 시행하고, 근로시간 비례 보호와 균등처우 원칙에 따라 개정된 인사·복무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시간선택제 활성화를 통한 연구원의 만족도 향상 및 자기 발전시간 부여는 창의성과 연구경쟁력 향상 및 성과에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시간선택제 근로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고용 관행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한국은 남성 위주, 장시간 근로, 전일제 근로문화를 갖고 있다. 유럽 선진국들은 대부분 근로시간 단축과 전일제 근로의 틀을 깬 지 오래다. 정부도 ‘고용률 70% 로드맵’을 통해 시간제 일자리·유연근무제 확산, 창업 활성화, 여성과 장년층의 사회 진출 확대 등의 정책을 펴고 있는 만큼 시간선택제 근로 분위기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민간 기업들의 참여도 필수다. 특히 대기업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일부 업무의 시간선택제 시행을 솔선수범할 필요가 있다. 규제 혁파를 통해 서비스업에서 고급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면서 시간선택제 근로를 장려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제조업은 전산화, 자동화 등으로 일자리 창출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서비스업은 전반적으로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고 보수도 적은 편이다. 선진 서비스업을 육성하고, 해외 진출이 가속화될 경우 시간선택제 도입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선택제 근로 확대로 선진 노동관행이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박성현 <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parksh@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