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錢)의 대이동…주식시장, 환승지냐 종착지냐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여파로 은행을 탈출한 자금이 금융투자 상품으로 움직이고 있다. 직접 주식 투자에 나서기보다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통하는 주가연계증권(ELS), 채권형펀드로 자금이 흘러들어 가고 있다.

◆은행 탈출한 돈 MMF와 ELS로

한국은행과 KDB대우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한국은행의 첫 기준금리 인하 이후 지난 1월까지 은행권을 빠져나간 정기예금 자금은 7조6200억원어치에 달한다. 올해 1월에 빠져나간 돈만 3조9000억원어치다. 전문가들은 이번 금리 인하 효과가 드러나는 3월 통계까지 합하면 연초 이후 10조원 이상의 자금이 은행에서 탈출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자금의 첫 행선지는 ‘예비 자금 집합소’로 불리는 머니마켓펀드(MMF)다. MMF 잔액은 3월 들어서만 7조2800억원어치 늘었다. 올해 이후로 계산 범위를 넓히면 순유입액이 20조원을 넘는다. 그만큼 시중자금이 단기부동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ELS에도 꾸준히 자금이 유입되는 모습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27일까지 발행된 ELS는 9조2119억원어치다. 월 단위로 보면 퇴직연금이 대거 ELS를 매입한 지난해 12월(10조4561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규모다. 기존 ELS가 조기상환, 혹은 만기상환돼 이 자금을 새 상품으로 옮긴 사례를 빼고 집계한 순유입액도 3월 2조1100억원, 올 들어 5조600억원에 달한다.

채권형펀드 시장에도 유동성 효과가 뚜렷하게 감지된다. 국내 채권형펀드로 유입된 자금은 2월 2조6200억원, 3월 9700억원 등으로 집계됐다.

◆주식시장은 ‘덤덤’

주식시장은 유동성 훈풍에서 다소 빗겨나 있다. 해외 주식이나 코스닥 중소형주 쪽으로 자금이 들어오고 있지만 유가증권시장 대형주는 여전히 ‘팔자’ 쪽이 우세하다.

개인투자자들은 3월 들어 27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1600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지난달 1조7800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아치웠던 것에 비해서는 투자심리가 개선됐다. 하지만 주식형펀드 환매는 여전하다. 3월 들어 주식형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1조5000억원이다.

그나마 코스닥 중소형주와 해외 주식 쪽은 상황이 낫다. 개인들은 3월 들어 코스닥시장에서 5100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해외주식 투자 열기도 살아나고 있다. 지난달 해외주식형펀드가 68개월 만에 순유입세로 바뀌었고, 3월 들어선 4700억원의 자금이 새로 유입됐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하 효과가 코스피지수 상승으로 이어지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2050선 근처에서 무너진 전례가 많고, 하반기엔 미국 금리 인상이란 대형 악재도 기다리고 있어서다. 이중호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지수가 박스권을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까지는 ELS와 같은 중위험 상품 쪽으로 자금이 쏠릴 것”으로 내다봤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전략부장은 “과거 데이터를 보면 금리 인하기엔 채권 펀드로, 금리가 바닥을 치고 완만하게 상승할 때는 주식형펀드로 자금이 몰린다”며 “미국 금리 인상에 대한 공포 심리가 누그러지고 금리 바닥도 확인되는 3분기쯤 돼야 가계 자금이 본격적으로 증시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