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전문가 제도 25년…글로벌 삼성 첨병 5000명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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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80개국서 2년간 언어·문화 습득
원기찬, 지역전문가 중 첫 사장 승진
김기선·연경희 등 여성 임원도 배출
원기찬, 지역전문가 중 첫 사장 승진
김기선·연경희 등 여성 임원도 배출
1995년 5월 베트남 공산당의 도므어이 서기장이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을 찾았다. 여기엔 100여명의 수행원이 동행했다. 베트남 진출을 노리던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접대’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베트남어를 할 줄 아는 직원 18명을 총동원해 공장 안내를 맡겼다. 이어진 점심 시간에도 테이블마다 나눠 앉아 대화를 나누도록 했다.
도므어이 서기장 일행은 “베트남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며 놀라움과 친근함을 나타냈다. 이들의 뇌리엔 자연스럽게 “삼성은 다르다”는 이미지가 자리 잡았다. 이는 삼성이 2000년대 초 베트남에 진출할 때 보이지 않는 힘이 됐다.
◆25년간 5000명 전문가 양성
당시 도므어이 서기장 일행을 놀라게 한 삼성 직원들은 ‘베트남 지역전문가’ 출신이다. 지역전문가는 삼성의 독특한 글로벌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다. 1990년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도입했다. 올해로 꼭 25년이 됐다. 그동안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곤 한 번도 선발을 거르지 않았다.
올해도 350여명이 이달 말부터 세계 각지로 떠난다. 지역전문가로 뽑힌 직원은 아무 조건 없이 원하는 국가에 1~2년간 머물며 현지 언어와 문화를 익힐 수 있다. 삼성은 연봉 외에 1인당 1억원 안팎의 체재비를 지원한다. 삼성은 올해까지 1조원가까운 돈을 투자해 5000여명의 지역전문가를 길러냈다. 이들이 머문 국가는 80개국이 넘는다.
지역전문가 출신 임원도 늘어나고 있다.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이 대표적이다. 원 사장은 1994년 지역전문가로 미국을 다녀왔고 이후 삼성전자 인사팀장을 거쳐 지난해 사장으로 승진했다. 지역전문가 출신 중 첫 사장 승진이었다. 여성 임원으로는 삼성전자 김기선 상무(1995년 영국), 연경희 상무(2003년 싱가포르) 등이 지역전문가 출신이다. 김현주 삼성전자 상무(1993년 일본), 한인호 삼성물산 상무(1995년 중국)도 지역전문가 출신으로 임원이 됐다.
삼성은 과거엔 주로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 직원들을 내보냈다. 하지만 요즘은 세계 최대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 인도 등 신흥시장에 주로 파견한다. 선진국은 이미 해당 지역을 잘 아는 전문가가 많은 데다 삼성 브랜드가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는 판단에서다.
제도 도입 초기, 그룹 내에선 반대도 적지 않았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데다 당장 현장에서 일손을 빼내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계열사 사장들은 물론 회장 직속의 비서실에서도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이 회장은 “국제화, 국제화 하지만 국제화된 인력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밀어붙였다. “이 일은 사장들이 직접 챙겨도 시원찮을 텐데 실무자들이 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소완급(大小緩急)을 가리지 못한다”고 사장들을 다그치기도 했다. 도입 첫해 실무진이 20여명을 선발해 결재를 올리자 이 회장이 “아직도 내 말뜻을 못 알아듣느냐”고 호통을 치며 200여명을 내보냈다.
◆“삼성의 글로벌화를 이끈 주역”
이렇게 해외로 나가게 된 지역전문가들은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첨병 역할을 했다. 실제 삼성에선 지역전문가와 관련한 ‘전설’ 같은 일화가 적지 않다.
삼성 관계자는 “10여년 전 인도네시아 지역전문가 출신인 모 차장이 현지 고위 관료의 딸과 결혼해 인도네시아 전자협회장을 맡아 화제가 된 적이 있다”며 “삼성의 인도네시아 시장 공략에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삼성 안팎에선 삼성 직원들이 ‘강병(强兵)’이 된 근원으로 학력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조직 문화와 함께 주저 없이 지역전문가 제도를 꼽는다.
해외에서도 지역전문가는 연구 대상이다. 2011년 세계적 경영 학술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지역전문가 제도를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빠르게 성공한 핵심 비결”로 꼽았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도므어이 서기장 일행은 “베트남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며 놀라움과 친근함을 나타냈다. 이들의 뇌리엔 자연스럽게 “삼성은 다르다”는 이미지가 자리 잡았다. 이는 삼성이 2000년대 초 베트남에 진출할 때 보이지 않는 힘이 됐다.
◆25년간 5000명 전문가 양성
당시 도므어이 서기장 일행을 놀라게 한 삼성 직원들은 ‘베트남 지역전문가’ 출신이다. 지역전문가는 삼성의 독특한 글로벌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다. 1990년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도입했다. 올해로 꼭 25년이 됐다. 그동안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곤 한 번도 선발을 거르지 않았다.
올해도 350여명이 이달 말부터 세계 각지로 떠난다. 지역전문가로 뽑힌 직원은 아무 조건 없이 원하는 국가에 1~2년간 머물며 현지 언어와 문화를 익힐 수 있다. 삼성은 연봉 외에 1인당 1억원 안팎의 체재비를 지원한다. 삼성은 올해까지 1조원가까운 돈을 투자해 5000여명의 지역전문가를 길러냈다. 이들이 머문 국가는 80개국이 넘는다.
지역전문가 출신 임원도 늘어나고 있다.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이 대표적이다. 원 사장은 1994년 지역전문가로 미국을 다녀왔고 이후 삼성전자 인사팀장을 거쳐 지난해 사장으로 승진했다. 지역전문가 출신 중 첫 사장 승진이었다. 여성 임원으로는 삼성전자 김기선 상무(1995년 영국), 연경희 상무(2003년 싱가포르) 등이 지역전문가 출신이다. 김현주 삼성전자 상무(1993년 일본), 한인호 삼성물산 상무(1995년 중국)도 지역전문가 출신으로 임원이 됐다.
삼성은 과거엔 주로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 직원들을 내보냈다. 하지만 요즘은 세계 최대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 인도 등 신흥시장에 주로 파견한다. 선진국은 이미 해당 지역을 잘 아는 전문가가 많은 데다 삼성 브랜드가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는 판단에서다.
제도 도입 초기, 그룹 내에선 반대도 적지 않았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데다 당장 현장에서 일손을 빼내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계열사 사장들은 물론 회장 직속의 비서실에서도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이 회장은 “국제화, 국제화 하지만 국제화된 인력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밀어붙였다. “이 일은 사장들이 직접 챙겨도 시원찮을 텐데 실무자들이 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소완급(大小緩急)을 가리지 못한다”고 사장들을 다그치기도 했다. 도입 첫해 실무진이 20여명을 선발해 결재를 올리자 이 회장이 “아직도 내 말뜻을 못 알아듣느냐”고 호통을 치며 200여명을 내보냈다.
◆“삼성의 글로벌화를 이끈 주역”
이렇게 해외로 나가게 된 지역전문가들은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첨병 역할을 했다. 실제 삼성에선 지역전문가와 관련한 ‘전설’ 같은 일화가 적지 않다.
삼성 관계자는 “10여년 전 인도네시아 지역전문가 출신인 모 차장이 현지 고위 관료의 딸과 결혼해 인도네시아 전자협회장을 맡아 화제가 된 적이 있다”며 “삼성의 인도네시아 시장 공략에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삼성 안팎에선 삼성 직원들이 ‘강병(强兵)’이 된 근원으로 학력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조직 문화와 함께 주저 없이 지역전문가 제도를 꼽는다.
해외에서도 지역전문가는 연구 대상이다. 2011년 세계적 경영 학술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지역전문가 제도를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빠르게 성공한 핵심 비결”로 꼽았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