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리콴유 국정철학이 한국에 주는 교훈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별세함에 따라 그의 국정철학이 재조명되고 있다. 영국의 식민지를 거쳐 말레이시아연방에서 떨어져 나온 최빈국 싱가포르를 한 세대 만에 세계 최고 선진국으로 이끈 방법 말이다.

대외개방을 통해 비교우위 분야에 특화를 해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지만, 정치적 이유로 비교열위 산업을 그대로 떠안고 가는 경우가 많다. 싱가포르는 비교우위산업으로의 특화를 확실하게 함으로써 비효율성을 최대로 줄였다. 점차적으로 하이테크산업으로 특화했고, 금융·보험·통신·컨벤션 개최 등 서비스 위주 경제로 초점을 옮겼다. 이 과정에서 사라지는 비교열위산업 종사자들의 불만을 해결한 방법은 기상천외하다.

리 전 총리는 이들에게 보조금을 주기 시작하면 결국 보조금을 당연히 받아야 하는 걸로 여기게 되고, 일을 하지 않으려 하는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1960년대에 이미 간파했다. 보조금 대신 공공주택을 분양해주고 노후 연금제도를 강화하는 한편, 사회 인프라시설을 확충해 나갔다. 그 결과 오늘날 싱가포르 국민의 자가주택 보유율은 80%에 육박하고 있으며, 집을 갖게 된 국민들의 근로의욕은 높아졌다.

인프라를 확충하는 과정에서는 환경친화적 개발정책을 의도적으로 펼쳤다. 이미 경제개발이 진행된 뒤 파괴된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배의 노력이 든다는 것을 간파해 녹지를 조성하고 수질을 개선하는 작업을 개발사업과 항상 병행했다. 싱가포르처럼 고층빌딩이 즐비한 도시에서 숲이 울창한 공원과 골프장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고급 해외투자를 유치하려면, 반드시 고급 인프라를 갖춰놓아야 한다는 지론에서다. 중국어, 말레이어, 인도어 등을 각각 사용하던 국민에게 일찌감치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토록 한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 결과 오늘날 싱가포르 국내총생산(GDP)의 40% 이상이 외국기업 및 외국인투자로부터 발생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은 클레멘트 애틀리 총리의 노동당정권이 집권했다. 이들은 페이비언주의에 입각해 국민건강보험제도, 임대공영주택 등의 수단을 통해 점진적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 했다. 이때 영국 유학 중이던 리 전 총리는 이런 정책에 감화를 받고, 페이비언주의의 이상주의적 색채는 제거한 뒤 극도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정책방향을 설정해 싱가포르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사회복지제도로 보장하는 복지(welfare) 국가가 아니고, “모두에게 사기로 만든 밥그릇을 하나씩 나눠주겠는데, 이를 깨지 않고 보호하는 것은 각자의 몫”임을 분명히 하는 공정한(fair) 국가를 지향한 것이다.

노조와 회사와의 관계도 정부가 노사정협의체를 통해 적극적 중재역할을 함으로써 파업을 예방했다. 국영기업도 시장경제 원리를 철저히 적용하고 전문경영인이 경영해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도록 했다. 공직의 부패를 뿌리뽑기 위해 리 전 총리가 한 것은 부패전담 조사기관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공무원의 보수를 민간기업 보수체계에 맞췄다. 최고의 민간기업 경영인을 공직에 끌어들이고 부패 없이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치다.

한국은 아직도 비교열위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출하고 있다. 영어 공용화 얘기를 꺼내는 사람은 애국심을 의심받는다. 자기집 하나 마련하는 것이 평생 소원인 젊은 세대가 늘어만 간다. 환경파괴적 도시개발의 후유증을 처리하느라 막대한 예산이 지출되고 있다. 이익금을 가져가는 외국인투자자에는 따가운 눈총이 쏟아진다. “항상 국민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권은 통치 자격이 없다”는 리 전 총리의 말은 전시행정과 인기정치의 타성에 젖어 있는 우리에게 따끔한 교훈을 준다.

최원목 < 이화여대 교수·싱가포르국립대 방문교수 wmchoi@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