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할 일, 못할 일, 안 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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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이스라엘의 한 학자가 축구 페널티킥(PK)을 관찰했다. 차는 방향이 대략 왼쪽, 오른쪽, 중앙 3분의 1씩이었다. 하지만 골키퍼는 절반은 왼쪽, 절반은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가운데로 오는 공을 막을 확률이 3분의 1인데도. 가만히 서서 골을 먹었을 때 멍청하다는 비난이 더 괴롭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행동편향(action bias)이다. 골키퍼 바이어스라고 부를 만하다.
요즘 정부가 쏟아내는 정책과 제도들이 PK를 막겠다고 넘어지는 골키퍼처럼 시행착오의 종합백화점이다. 사회 이슈는 곧바로 정책과 입법안으로 쏟아진다. 정치권과 언론, 대중은 ‘정부는 뭐하냐’고 독촉한다. 급조된 법과 제도에 어떤 폐해가 숨어있는지 알 리 없다. 정치인과 관료들은 대개 ‘할 일’과 ‘못할 일’을 잘 구분 못한다. ‘해서는 안 될 일’도 서슴지 않는다. 가만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텐데.
개입해 망치는 억지정책 쏟아내
명분이 그럴싸할수록 행동편향은 심각해진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밀어붙인 제7홈쇼핑이 그렇다. 공영성을 강화해 중소기업의 창의·혁신상품 판로를 넓혀주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2001년 제4(우리홈쇼핑), 제5(NS홈쇼핑), 2011년 제6홈쇼핑(홈앤쇼핑) 허가 사유도 중소기업 제품 및 농수산물 판로 확대였다. 이들이 민간 홈쇼핑과 다를 바 없다고 새 홈쇼핑을 만들겠단다. 그렇다면 감독을 잘할 일이지 새로 허가할 이유가 될까.
더구나 제7홈쇼핑 운영주체는 정부가 실패로 규정한 제6홈쇼핑 주주들(중소기업유통센터, 농협)이다. 이들이 갑자기 개과천선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중소기업 전용을 표방한 중기유통센터의 행복한백화점, 정부가 무역협회 등 떠밀어 만든 K몰24도 ‘도 긴 개 긴’이다. 보호하고 칸막이 칠수록 시장은 더 쪼그라든다는 사실을 겪어 보고도 모른다.
말썽 많은 단통법도 정부는 성공적이라고 자평한다. 업자들을 찍어눌러 할인도, 마케팅도 못하게 막고 단순히 가입자 평균요금이 낮아졌으니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다. 가입자들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저하는 아예 못본 척한다. 도서정가제도 중소 출판사·서점을 돕는다는 취지야 나무랄 데 없다. 그러나 경영의 필수인 재고 정리도, 소비자의 염가 구매기회도 봉쇄한 후유증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가뜩이나 국민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개탄하면서 더 안 읽게 만들고 있다.
‘완전한 정부’ 착각에 시장 질식
금융당국은 기술금융, 관계금융으로 은행 경영을 지도하더니 이젠 선착순 배급(안심대출)에까지 이르렀다. 차주의 신용, 만기에 상관없이 똑같은 금리다. 신용질서와 자기책임 원칙을 정부가 스스로 부인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정부가 직접 장사하고, 민간과 경합하고, 가격 찍어누르고, 사적계약에 개입하는 게 당연한 일처럼 돼 버렸다. 대통령은 규제혁파를 외치는데 관료들의 뇌 속에는 반시장과 규제만능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 국가가 간섭할수록 경제적 자유는 질식한다. 관료들이 해선 안 될 일도 서슴지 않는 환경에서 민간의 창의와 혁신이 나올 리 없다. 경제 활성화는 더더욱 난망이다.
공익이 강조될수록 공익과 멀어진다. 완전경쟁시장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이 ‘완전한 정부’라는 허상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관료들은 무조건 몸을 날리는 골키퍼와도 같다. 그것도 왼쪽으로만. 그사이 경제는 퉁퉁 불어터진 국수가 되어 간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요즘 정부가 쏟아내는 정책과 제도들이 PK를 막겠다고 넘어지는 골키퍼처럼 시행착오의 종합백화점이다. 사회 이슈는 곧바로 정책과 입법안으로 쏟아진다. 정치권과 언론, 대중은 ‘정부는 뭐하냐’고 독촉한다. 급조된 법과 제도에 어떤 폐해가 숨어있는지 알 리 없다. 정치인과 관료들은 대개 ‘할 일’과 ‘못할 일’을 잘 구분 못한다. ‘해서는 안 될 일’도 서슴지 않는다. 가만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텐데.
개입해 망치는 억지정책 쏟아내
명분이 그럴싸할수록 행동편향은 심각해진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밀어붙인 제7홈쇼핑이 그렇다. 공영성을 강화해 중소기업의 창의·혁신상품 판로를 넓혀주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2001년 제4(우리홈쇼핑), 제5(NS홈쇼핑), 2011년 제6홈쇼핑(홈앤쇼핑) 허가 사유도 중소기업 제품 및 농수산물 판로 확대였다. 이들이 민간 홈쇼핑과 다를 바 없다고 새 홈쇼핑을 만들겠단다. 그렇다면 감독을 잘할 일이지 새로 허가할 이유가 될까.
더구나 제7홈쇼핑 운영주체는 정부가 실패로 규정한 제6홈쇼핑 주주들(중소기업유통센터, 농협)이다. 이들이 갑자기 개과천선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중소기업 전용을 표방한 중기유통센터의 행복한백화점, 정부가 무역협회 등 떠밀어 만든 K몰24도 ‘도 긴 개 긴’이다. 보호하고 칸막이 칠수록 시장은 더 쪼그라든다는 사실을 겪어 보고도 모른다.
말썽 많은 단통법도 정부는 성공적이라고 자평한다. 업자들을 찍어눌러 할인도, 마케팅도 못하게 막고 단순히 가입자 평균요금이 낮아졌으니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다. 가입자들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저하는 아예 못본 척한다. 도서정가제도 중소 출판사·서점을 돕는다는 취지야 나무랄 데 없다. 그러나 경영의 필수인 재고 정리도, 소비자의 염가 구매기회도 봉쇄한 후유증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가뜩이나 국민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개탄하면서 더 안 읽게 만들고 있다.
‘완전한 정부’ 착각에 시장 질식
금융당국은 기술금융, 관계금융으로 은행 경영을 지도하더니 이젠 선착순 배급(안심대출)에까지 이르렀다. 차주의 신용, 만기에 상관없이 똑같은 금리다. 신용질서와 자기책임 원칙을 정부가 스스로 부인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정부가 직접 장사하고, 민간과 경합하고, 가격 찍어누르고, 사적계약에 개입하는 게 당연한 일처럼 돼 버렸다. 대통령은 규제혁파를 외치는데 관료들의 뇌 속에는 반시장과 규제만능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 국가가 간섭할수록 경제적 자유는 질식한다. 관료들이 해선 안 될 일도 서슴지 않는 환경에서 민간의 창의와 혁신이 나올 리 없다. 경제 활성화는 더더욱 난망이다.
공익이 강조될수록 공익과 멀어진다. 완전경쟁시장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이 ‘완전한 정부’라는 허상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관료들은 무조건 몸을 날리는 골키퍼와도 같다. 그것도 왼쪽으로만. 그사이 경제는 퉁퉁 불어터진 국수가 되어 간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