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빼곡한 희망쪽지 > 컨테이너 내부의 한쪽 벽은 20대 청년들이 자신의 포부와 소망을 적은 200여개 ‘희망쪽지’로 빼곡하다.
< 빼곡한 희망쪽지 > 컨테이너 내부의 한쪽 벽은 20대 청년들이 자신의 포부와 소망을 적은 200여개 ‘희망쪽지’로 빼곡하다.
“옥상 컨테이너에서 만난 사람들과 직접 공연을 기획하게 되다니…. 꿈에 한걸음 다가선 것 같아요.” 대학생 이보라 씨(23·한국방송통신대)는 인디밴드 공연을 관람하며 느낀 감성을 바탕으로 자작곡을 쓰는 게 취미다. 장래에 공연기획자가 되겠다는 막연한 포부를 갖고 있었지만,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그동안 시간 날 때마다 공연장을 찾아다녔다. 그런 이씨에게 작은 공연을 직접 기획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해 12월부터 참여한 ‘옥상프로젝트’란 모임에서 노래 진행 홍보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려는 사람들을 알게 된 것. 지금은 이들과 함께 ‘옥상쇼’라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버려진 컨테이너에 모여 각자의 꿈을 이뤄가는 청년공동체가 있어 화제다. 옥상프로젝트로 불리는 이 모임은 지난해 3월 서울 봉천동의 한 아파트단지 상가 옥상에 버려진 컨테이너에서 시작됐다. 지난 24일 찾은 컨테이너 내부의 한쪽 벽은 20대 청년들이 자신의 포부와 소망을 적은 200여개 ‘희망쪽지’로 빼곡했다. ‘만화작가 되기’ ‘임용고시 합격’ ‘학점 3.0 회복’ ‘여자친구 사귀기’ 등 내용도 다양했다.

이 모임은 지난해 석은원 씨(24)가 시작했다. 군에서 전역한 뒤 꿈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때였다. 석씨는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 고민하다가 문득 다른 친구들의 꿈도 알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자신이 살던 동네의 상가 옥상에 있는 빈 컨테이너가 떠올랐다. 그는 컨테이너 소유주인 교회에 찾아가 “젊은이들을 위해 빌려달라”고 요청했고, 교회 측도 흔쾌히 허락했다.

컨테이너로 모여든 청년들이 꿈만 꾸는 것은 아니다. ‘옥상쇼’라는 공연을 함께 준비하며 실력을 쌓고 있다. 지금까지 카페 등을 빌려 16번의 옥상쇼를 열었고, 4월엔 17번째 공연을 펼친다. 이번 옥상쇼 진행은 라디오DJ가 꿈인 학생이 맡는다. 사진작가가 되길 소망하는 학생은 공연장에 사진을 전시할 계획이다. 한 작가 지망생은 기획안과 홍보 문구를 쓰는 작업에 여념이 없다. 내부 인테리어는 공간디자이너를 지망하는 학생 몫이다. ‘옥상쇼’는 청년들의 재능이 하나로 합쳐져 완성되는 일종의 발표회다. 지금까지 옥상쇼를 통해 ‘자신의 미래 직업’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청년들만 50명에 달한다.

옥상 컨테이너에서 함께 꿈을 꾼 지 1년. 조금씩 목표에 다가서는 청년들이 나오고 있다.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김봉준 씨는 옥상쇼 영상을 편집한 경험을 토대로 직접 독립영화를 제작했다.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싶다던 태권도 전공자는 최근 사범자격증을 따 정식 사범이 됐다. 옥상프로젝트에 참여한 뒤 한식조리사자격증을 취득한 요리사 지망생도 있다. 옥상프로젝트의 회장 배상원 씨(24)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옥상쇼를 통해 각자 꿈을 조금씩 실천하며 희망을 찾아가고 있다”며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혼자가 아니라 함께 꿈을 나누고 서로 도울 수 있다는 게 이 모임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입소문 등을 통해 옥상쇼의 독특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돕고 싶다”는 연락도 잇따르고 있다. 배씨는 “여행 프로젝트인 ‘여행다큐 지옥행’, 패션쇼, 옥상 시트콤 제작 등 다양한 형태로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