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전관예우? 자신없는 자들이나 하는 것…큰 차·넓은 사무실보다 실력 갖춰라"
지난 27일 오후 6시 법무법인 충정 회의실. 이른바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다. 모두 마음이 들뜰 시간이지만 이곳만은 차분하고 사뭇 진지했다. 마이크를 잡은 노신사가 ‘한국인의 법의식 특징’을 주제로 얘깃거리를 던지자 곳곳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가진 자들이 법이란 잣대를 가지고 압력을 행사하니까 일반인의 법의식이 부정적인 것 아닌가요?”(권준수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과장), “법은 과거이고 하려는 것은 미래입니다. 우버처럼 결국 다 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조광수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묵직한 질문들에 잠깐 생각에 잠긴 노신사가 이내 답변을 내놓았다. 이렇게 주고받은 문답 시간이 40여분. 자리를 인근 식당으로 옮겨 이어진 토론은 오후 9시를 훌쩍 넘어서야 끝났다.

노신사는 법무법인 충정 창립자인 황주명 회장(사진)이다. 모임 이름은 애간지(愛間智). ‘에지 있고, 간지 나게’ 사유의 최첨단을 나눠보자는 취지로 황 회장이 작년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등과 함께 만들었다.
황주명 법무법인 충정 회장(가운데)을 비롯한 ‘애간지’ 회원들이 연구모임이 끝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애간지 제공
황주명 법무법인 충정 회장(가운데)을 비롯한 ‘애간지’ 회원들이 연구모임이 끝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애간지 제공
지금은 회원이 10명으로 늘었고, 한두 달에 한 번 모인다. 김성일 고려대 교수(두뇌동기연구소 소장), 서은국 연세대 교수(인간행동연구소 소장), 이석재 서울대 철학과 교수,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박영숙 플레시먼힐러드코리아 대표 등이 멤버다. 황 회장은 식사를 하면서 1965년 판사로 임관한 뒤 50년을 법조인으로 살아온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놓았다.

황 회장은 1961년 대학 4학년 때 고등고시(13회)에 합격했다. 10년 판사생활을 하다 1974~75년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유학했으며, 3년 뒤 사표를 냈다. 단독 개업하는 대신 기업에 들어갔다. 한국 사내변호사 1호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을 도와 대우실업 등에서 일하며 탁월한 리더십과 넉넉한 풍채로 ‘당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내변호사는 (어떤 일이) 틀려도 결론을 내야 합니다. 또 자신이 변호사가 아니라 회사원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폴리스맨(경찰)이 돼선 안 되고 함께 상의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그가 터득한 사내변호사로 성공하기 위한 조건이다.

판사 사내변호사에 이은 법조계 종착역은 로펌이다. 1993년 8명의 창립멤버와 함께 법무법인 충정을 설립했다. “장사로 이윤을 남겨 차근차근히 하기보다는 한탕 하려는 생각이 많아 나와 맞지 않았다”는 것이 기업을 뛰쳐나온 이유다.

당시 로펌의 행태도 못마땅했다. “변호사들이 의뢰인에게 서비스할 생각은 없고 돈이나 받을 생각만 해요. 보여주기 위해 좋은 차나 넒은 사무실을 가져야 한다는 관념도 외국과는 차이가 많았어요.”

그가 생각하는 올바른 로펌관 내지 변호사관은 뭘까. 황 회장은 “변호사가 공공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은 과거 얘기”라고 일축했다. “변호사가 돈 많이 벌면 성공한 것으로 보는데 그보다 법적인 실력이 중요합니다. 법적으로 의뢰인을 잘 보호하는 것이 변호사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황 회장은 전관예우에 대해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며 단호하게 반대했다. 그는 요즘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다. 독일어 영어 일본어에 이은 네 번째 외국어 공부다. “몰입하니까 이 나이에도 잘 외워집니다.” 황 회장은 원칙, 본능, 몰입이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소개했다.

배석준 기자 eu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