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안심대출과 금융위의 착각
2차 안심전환대출 접수 마감을 하루 앞둔 2일 만난 한 시중은행 지점 직원은 피곤한 모습이었다. 그는 “지난주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늘어난 업무량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상품 영업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며 “은행이 입을 손실에 대해 실수가 있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지난 화요일엔 주요 은행 노조위원장들이 서울 광화문 금융위원회를 찾아 ‘안심대출의 후폭풍을 우려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만기 일시상환 조건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이자율을 낮춰준다는 말에 혹해 원리금 분할 상환으로 바꿨다가 나중에 돈을 갚지 못하면 누가 책임지냐”는 것이었다.

안심대출은 1000조원을 웃도는 가계부채 문제를 그냥 놔둘 수 없다는 정부 판단에서 나왔다. 가만히 있기보다는 뭔가 대책을 내놨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예컨대 이상제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산업연구실장은 “미국의 금리 인상이 필연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변동 금리형 대출상품이 75%에 달하는 가계부채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많은 전문가들은 금융위가 놓친 게 더 많다고 지적한다. 시장이 시나리오대로 움직일 것이라는 가정부터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애초 확보한 20조원 규모의 재원이 불과 1주일 만에 동나 20조원을 추가로 마련해야 할 만큼 ‘광풍’이 몰아칠지 예상하지 못했다. 은행권의 손실만해도 금융위는 노조위원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예측이 잘못됐다’고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민간 자율로 정한 대출 가격(금리+중도상환수수료)에 인위적으로 개입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은행 창구에는 ‘안심대출만큼 금리를 낮춰달라’는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안심대출 후속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서민·취약계층을 위한 대출을 내놓으라는 정치권 압박을 의식해서다. 하지만 “기다리면 또 다른 상품이 나오겠지”라는 금융 소비자들의 기대심리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금융위는 이제라도 ‘공짜 점심은 없다’는 진리를 국민에게 알릴 방도를 찾아야 한다.

박동휘 금융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