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교육에 대한 정부 시책이 이제 막 진입 단계에 와 있다면 민간 부문에선 한창 기지개를 켜고 꽃을 피우는 중이다. 2013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소프트웨어, 즉 코딩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곳은 ‘생활코딩’을 제외하고는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코딩 교육의 효시 격인 생활코딩을 위시로 소프트웨어교육연구소·코딩클럽·대디스랩 등 코딩 교육을 표방하는 단체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104년 들어서다.

송상수 소프트웨어교육연구소장 “초등생부터 코딩 배워야죠”

송상수 소프트웨어교육연구소(sedulab.org) 소장. 스스로도 ‘소장님’이라는 직함이 어색한 26세의 청년이다. 송 소장은 2013년까지만 해도 교육대를 졸업한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교사 생활 1년 만에 교단에서 내려와 소프트웨어 교육 전문가의 길로 들어선 건 어린 시절부터 간직했던 꿈을 포기할 수 없어서였다.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 게임보다 파일 뜯어보는 게 재밌었어요. 1~2학년 때부터 프로그래밍 책을 보기 시작했죠. 중학교 때는 학습 자료를 공유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만들었는데, 3년 만에 회원이 30만 명이 넘었어요. 나중엔 다른 분에게 양도했죠.”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는 부모님의 말씀을 따라 결국 교대에 진학했지만 소프트웨어에 대한 경험과 교육 사이에 반드시 접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늘 마음속에 품어 왔다. 오히려 대학 생활은 소프트웨어 교육 전문가의 꿈을 키운 시간이 됐다. 1년 남짓의 교사 생활을 접한 후엔 아예 교단을 떠나 2014년 NHN 넥스트(네이버가 세운 소프트웨어 전문 교육기관)에 입학했다.

“NHN 넥스트에서도 교육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소프트웨어 교육이라는 게 개발자의 시선으로 이뤄진 게 대부분이었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 프로그램이나 기관이 전무했어요. 연구소를 세우기로 마음먹은 이유죠.”

작년 2월부터 준비를 시작해 한 달 후부터 ‘소프트웨어교육연구소’란 간판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언플러그드 컴퓨팅 도구를 연구하고 제작하는 ‘엔트리코리아’에도 책임연구원으로 합류했다. 현재 연구소에서 함께하는 연구원 6명은 모두 NHN 넥스트의 교육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인연들이다. 연구소는 철저하게 비영리 전문 연구 단체를 표방한다. 교육·연구·봉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게 목표다. 송 소장은 “책상에서 씨름하지 말고 현장에서 연구하자는 게 연구소의 모토”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교육과 소프트웨어 콘텐츠 개발, 교육 연구 등이다.

작년에 정보통신산업진흥원·경기도콘텐츠진흥원 등과 함께한 소프트웨어 교육 교실은 소프트웨어 교육과 대중화를 위한 작업이었다. 코딩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직 대중에게 낯선 현실이라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대중화 작업이 그간 연구소 활동의 초점이었다. 학부모와 일반인 대상 세미나, 아이와 부모가 함께하는 소프트웨어 체험 세미나 등이 모두 소프트웨어 대중화를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 연구소 설립 1년여 만에 초등생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1000여 명이 소프트웨어 교육에 참가했다. 교육 전공자답게 전문 인력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국내 대표적인 보안 기업인 안랩에서 소프트웨어 강사 양성 프로그램을 열기도 했다. 소프트웨어 대중화라는 연구소의 목표를 위해 모든 활동·연구 자료는 인터넷(홈페이지와 slideshare.net)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세미나와 연수 등 모든 행사는 공공기관·기업의 협찬을 받아 진행한다. 학습자에게 직접 요금을 받지 않는 게 연구소의 철학이다. “서로의 장점을 공유해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소프트웨어 문화”라는 게 송 소장의 말이다.

연구소는 초등생을 주축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 외에 올해부터는 교사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좋은 교육을 위해선 좋은 교사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교사 연수에 힘을 쏟을 방침이다. 교육 프로그램, 세미나, 교사 연수 프로그램 등은 모두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하은희 코딩클럽 대표 “코딩은 열린 축제예요”

코딩클럽(codingclubs.org)은 2014년 10월 설립돼 이제 막 6개월에 접어든 비영리 교육 단체다. 설립자인 하은희 대표는 현재 LG전자 신기술발굴·투자팀에서 일하고 있다. 하 대표는 하버드에서 MBA를 마친 후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신사업 개발 분야에서 일했다. 귀국한 뒤에도 테크 기업에서 일했지만 기획·투자·파이낸싱이 주요 업무여서 개발자와는 거리가 한참 먼 게 사실이었다.

“간단한 애플리케이션(앱) 하나라도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러이러할 것이다’라는 가정뿐이었죠. 어떤 개발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지, 개발 기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어떤 기술 수준이 요구되는지 전혀 몰랐어요. 결국 제 생각과 실제 개발 사이엔 엄청난 괴리가 존재하더군요.”

개발에 직접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개발자들과 협업하고 돕는 수준까지는 가자고 결심한 것은 2012년 들어서였다. 그때부터 하 대표는 HTML·CSS·자바스크립트 등 소위 ‘3종 세트’부터 배워 나가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한계로 시작한 코딩 공부는 교육 봉사로 이어졌다. 하 대표는 이미 미국 생활 시절부터 교육 봉사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남달랐다. 귀국 후에도 방과 후 학교, 저소득층 교육 봉사 등에 활발히 참여해 왔다.

“회사 출장으로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미디어랩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다양한 교육용 프로그래밍 언어를 알게 된 계기였죠. 그곳에서 앱 개발 콘테스트가 열렸는데 수준이 대단했어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가가 되고 싶다’던 열두 살 아이의 말에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어요. 단순히 국영수 문제 잘 푸는 게 다가 아니란 걸 깨달았죠.”

MIT에서 처음 접한 ‘스크래치(MIT에서 어린이나 초보자를 위해 개발한 교육용 프로그래밍 언어)’부터 시작했다. 조카와 지인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작년 7월부터 6번 정도 체험 교실을 열었다. 교육·세미나 알림 사이트에 공고를 내 관심 있는 아이들도 모았다. 물론 혼자 힘으로 교육과정을 짜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좀 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이 절실했다. 2014년 10월 그간 가르친 경험도 나눌 겸 ‘코딩클럽’이란 이름으로 무작정 커뮤니티를 연 배경이다. 만남의 장이 열리자 코딩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게임사 퍼블리셔 등 현직 개발자, 정보 과목 교사, 대학 교수, 웹 퍼블리싱 회사 직원 등 구성도 다양했다.

코딩클럽은 ‘열린 교육’을 지향한다. 그 결과가 ‘캠프’다. 몇 시간 프로그램 언어 교육에 힘을 쏟는 것보다 다양한 신체 활동을 접목한 코딩 교육을 하루 종일 접해 봄으로써 아이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함께 부여한다는 콘셉트다. 올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주니어 소프트웨어 캠프’에선 운동회, 장기 자랑 같은 오프라인 활동을 애니메이션·뮤직비디오·게임 같은 소프트웨어로 만들게 된다. 캠프에서 즐긴 축제를 프로그래밍으로 구현하는 셈이다.

“코딩은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게 아니에요. 실생활에서 내가 좋아하는 걸 디지털 기기로 만들어 봄으로써 컴퓨터적 사고에 대한 경험을 쌓게 해 주는 도구일 뿐이죠. 논리적 사고와 창의적 아이디어를 코딩을 통해 배울 수 있어요.”

요즘 온라인 강의 동영상 녹화로 바쁘다는 이호준 씨는 요즘 잘나가는 게임사 ‘4:33 크리에이티브랩’ 퍼블리싱본부에서 근무 중인 현직 개발자로, 소프트웨어 교육에 대한 평소 관심 덕에 코딩클럽에 합류했다. 이 씨 역시 “작은 성공의 체험이지만 아이들이 우물 안을 벗어날 수 있는 결정적인 씨앗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소프트웨어 교육의 힘을 강조했다.

코딩클럽에서 진행하는 캠프 및 코딩 관련 프로그램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고 신청할 수 있다. 하 대표는 앞으로도 초·중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한 교육 캠프 활동을 더욱 확장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성인반을 대상으로 하는 중·장기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송영광 대디스랩 대표 “필요한 것 직접 만드는 시대죠”

송영광 대디스랩(www.daddyslab.com) 대표는 갤럭시 노트2 등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개발에 참여했던 개발자 출신이다. 이전에는 모토로라에서 일했고 대학과 대학원에선 전자공학을 전공한 ‘뼛속까지’ 엔지니어다. 그런 그가 코딩으로 자기만의 사업에 나섰다. 남들은 모두 부러워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내 일’을 시작한 것은 작년 1월이었다.

“앞으로는 비트와 아톰의 구분이 없는 사회가 열릴 거예요. 비트는 컴퓨팅의 최소 단위이고 아톰은 원자, 즉 물질의 최소 단위죠. 3D프린터가 좋은 예죠. 비트를 넣어 아톰으로 구현하잖아요. 가상과 물리의 세계가 통합된 모습이죠.”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며 첨단 정보통신기술(ICT) 제품을 생산해 낸다는 자부심 뒤에는 항상 본질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산업혁명을 통해 기업과 경제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 것처럼 앞으로는 ICT에 기반을 둔 사물인터넷(IoT) 등을 통해 또 다른 제조·경제 혁명이 일어난다는 게 송 대표의 전망이다.
시작은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였다. 스크래치부터 시작했지만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가상 세계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때 생각해 낸 게 바로 ‘게임튜브’라는 게임 컨트롤러였다. 아이가 코딩한 프로그램을 컨트롤러에 입력하는 식이다. 손을 움직이고 바람을 부는 대로 움직이는 게임 캐릭터에 아이는 비로소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회사 일이 너무 많아 가정을 등한시할 수밖에 없었어요. ‘일과 가정을 통합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아이와 함께한 경험에서 힌트를 얻었죠. 대기업은 곧 한계를 맞을 거예요. 미국에선 이미 생산자(메이커) 운동이 크게 일고 있죠. 개인이 자기 삶에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드는 시대가 될 수밖에 없어요. 코딩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에요.”

대디스랩은 철저하게 눈앞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생산물’을 중시한다. 그래서 이름도 ‘아빠의 공작소’다. 서판교 운중로에 자리 잡은 공작소에는 군데군데 3D 컴퓨터가 놓여 있다. 스크래치·앱인벤터·파이썬 등 오픈 소프트웨어와 아두이노·3D프린터 같은 오픈 하드웨어를 접목해 프로토 타입 제품을 직접 생산해 내는 식이다.

현재 대디스랩에서 교육 받는 인원은 25명 안팎으로 초등학생이 절반을 넘고 나머지는 중·고등 학생과 성인들이다. 컴퓨터와 코딩의 개념부터 시작해 소프트웨어 교육이 왜 중요한지 배우는 게 커리큘럼의 시작이다. 코딩보다 중요한 게 컴퓨터적 사고 능력(computational thinking)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후 아이와 아빠가 함께하는 스크래치 교육, 아두이노를 활용한 시제품 만들기 등으로 확장된다.

유료로 운영하는 전문 교육기관이지만 대디스랩에서 진행한 커리큘럼과 제작물, 심지어 제작 소스 등은 모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다.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오픈 소스 하드웨어를 표방하는 송 대표는 “우리의 실험을 통해 더 큰 시장이 만들어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대디스랩의 목표는 명확해요. 코딩이라는 기본 원리와 방법을 익히게 한 다음 자기가 생각한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게 해주는 거죠. 바로 기업가 정신입니다. 지금 우리 눈앞에서 ICT 혁명이 벌어지고 있어요. 그 기회를 우리 아이들만 놓쳐서는 안 되죠.”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1009호 제공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