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저금리 시대의 민자사업 활성화
점심식사를 겸한 모임에서 후배는 전화기만 바라보며 좌불안석이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며 아이를 돌봐주는 부모님의 전세 계약이 끝나가는데 집주인은 월세로 돌리든지 집을 비우든지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른 곳으로 옮길 형편이 아니라서 집값만큼 하는 ‘미친 전세’라도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대출을 받아 집을 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하지만 집값이 오르지는 않을 것 같다며 걱정을 늘어놓는다.

후배의 고민을 반영하듯 매매는 실수요자 중심으로, 임대차는 월세 중심으로 주택시장의 구조변화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임대주택 공급이 원활치 않아 월세 전환으로 인한 서민층의 주거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부동산시장을 살리겠다며 내놓은 재건축 규제완화로 인해 일부 지역의 이주 수요에 따른 전세 품귀현상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더구나 올해부터는 노후주택 증가율이 전체 가구 증가율을 앞지르고, 2023년께면 30년 이상 노후주택이 전체 주택 재고량의 50%에 육박할 것이라고 한다.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주택제도 개선 없이 전세대출 지원이나 전세기간 연장 같은 단기처방만으로는 역효과만 날 것으로 보인다.

사회간접자본(SOC) 분야도 상황은 비슷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토면적과 인구를 감안해 도로보급률을 산출하는 국토계수당 도로보급률은 한국이 1.49에 불과해 벨기에(8.52), 프랑스(5.54), 일본(5.53), 미국(3.75) 등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9위다. 그런데도 늘어나는 복지 지출로 인해 SOC 지출은 첫 번째 감축 대상이 됐다. SOC 신규투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전국 도심 도로와 고속도로의 안전 및 시설관리 투자는 지속돼야 하는 데도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고육지책으로 지난해 7월 임대형 민자사업(BTL)에 대한 민간 제안의 허용, 수익형 민자사업(BTO) 및 BTL 혼합형 사업의 도입, 부대사업의 내실화 등 민자유치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신규 민간제안사업을 활성화하기엔 대내외 경제·금융 환경이 녹록지 않다. 글로벌 양적 완화에 이은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고,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를 앞두고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확대됐다. 금융회사들을 위축시키는 불확실성과 고위험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미친 전세’가 기승을 부리는 근저에는 이런 불확실성을 경계하는 가계가 있다. 더욱이 외환위기 한때 경제의 구원투수로 각광받던 민자사업이 지금은 높은 통행료와 혈세 낭비의 원흉이란 비난을 받고 꼬리를 내린 상황이다.

따라서 축소된 SOC 분야에 대한 재정투자와 부족한 건설투자를 메우고 건설산업 연착륙을 위한 대안으로 민간투자사업을 떠올리기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과거 민간투자사업이 활발했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저금리 기조에서 예전만큼 금융수익을 추구하긴 어려운 상황이라 손익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설계를 한다면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니다. 과거처럼 정부 부처 간 이견으로 건설사의 선투자 비용만 발생시키거나 리스크는 사업 시행자가 부담하면서 자금 조달에 따른 이익은 주무관청이 가져가는 등의 부작용을 개선한다면 말이다. 한국 자본시장이 신공항과 같은 초대형 민자사업을 감당할 만큼 성장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때마침 부산시는 신공항 건설에 민자유치를 검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민자사업을 하는 이유는 민간의 자본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사회기반시설을 조기 완공해 국민생활의 편의성을 높이자는 것이란 점이다. 민자사업의 대상 시설을 법률에 세부적으로 나열할 것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개념화해 국민과 시장·정부의 판단에 의해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SOC와 부동산 관련 새로운 민관협력사업을 위한 혁신적인 방안이 나오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