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양호의 ‘아는 것을 버리다’.
윤양호의 ‘아는 것을 버리다’.
“소소한 사물이라도 뚫어지게 바라보면 고요한 가운데 미세한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 사람에게 영혼이 있듯이 모든 사물에는 각기 다른 혼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을 차례로 지워내면 결국 원(圓)의 형태만 남더군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청작화랑에서 9~26일 개인전을 여는 서양화가 윤양호 씨(49·원광대 조형예술학과 교수). 그는 “크고 작은 물건들에도 둥그런 ‘혼불’이 번득이는데 그 의미를 찾아내고 거기에 미학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게 예술”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독일 뒤셀도르프대에서 미술을 공부한 윤씨는 불교의 참선 등 동양적 세계관을 현대미학과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동안 독일에서 10여 차례 전시회를 여는 등 서울과 독일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윤씨는 생활불교를 추구하는 원불교 수행 체계를 독자적 조형 언어로 잡아낸다. 그는 20대 젊은 시절부터 승려들의 어록에 자주 등장하는 ‘적적성성’(寂寂惺惺·고요함 가운데 깨어 있음)을 그림의 주제이자 삶의 화두로 삼아 정(靜)과 동(動)을 함께 품은 선미(禪美)의 세계를 형상화했다.

윤씨는 참선을 통해 도달하는 ‘적적성성’의 경지를 둥근 원의 형상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그림 속에 드러낸다. 그는 작품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둥근 원에 대해 “삼라만상을 드러내는 것이자 윤회나 자연의 순환,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세계와 가장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형상”이라며 “원의 안팎은 고요함(靜)과 움직임(動)의 형상으로 구분돼 있지만 결국 하나로 맞물려 있다”고 설명했다. 움직이는 것을 비우고 또 비우다 보면 다름 아닌 고요함의 찌꺼기인 원의 이미지로 나타나게 된다는 논리다.

그의 작품은 무반주 음악처럼 단순하고 간결하다. 절제와 비움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에 군더더기가 없다. 아는 것을 비워내는 데서 오는 무념무상 같은 것이다. 윤씨는 “아는 모든 것을 버리다 보니 다소 싱겁다”고 겸손해했다. 그는 ‘아는 것을 버리다’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회에 일상에서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을 원형에 응축한 근작 30여점을 내보인다. (02)549-311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